◇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김영민 지음/308쪽·1만6000원·사회평론
“죽음을 마주하여 인간이 상심하는 것도 주제넘은 일인지 모른다. … 슬퍼하기를 멈추고 거역하기 어려운 거대한 힘에 순응하는 것이 상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겸허한 태도로 거대한 힘에 순응하는 데도 각별한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
삶이 이다지도 지난하단 걸 미리 알았더라면, 그리 애쓰지 않았을지도. 불현듯 찾아오는 햇살의 따스함만 바라보기엔 아픔이 너무 두껍고 묵직하다. 더구나 지금처럼 국민적 상실감이 휘몰아칠 때면 옷깃을 여미기도 버겁다.
‘인생의 허무를…’은 이럴 때 처방용 조제약 같은 책이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다양한 집필을 통해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한 저자는 이번 에세이집에서 허무(虛無)를 들여다봤다. 덧없고 덧없는 세상살이에 축처진 어깨를 우린 정말 어떻게 다독여야 할까.
전공이 동아시아 사상사 연구인 저자는 진작부터 “허무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책을 내리라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동아일보에 연재하는 칼럼 ‘김영민의 본다는 것은’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주제를 고민해 왔다. 그래서인지 에세이집에 실린 글들은 각자의 방향대로 흘러가면서도 하나의 바다로 모여드는 기분이 든다.
“인생을 즐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좋아하는 대상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환멸을 피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좋아하는 대상에 파묻히지 말아야 한다.”
균형을 잡는 건 언제나 어렵다. 안타깝고 부아 치밀 땐 더 그렇다. 갈기갈기 마음 찢긴 이에게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란 말은 쉽사리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쩌랴. 우린 또 보듬어야 한다. 이 시간을, 이 세월을. 잊지는 말되 조금씩 아물어 가길.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기를” 바라면서. 그래야 숨을 쉴 수가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