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주거복지의 현황과 요건… 韓, 法에 없는 ‘실버타운’ 명칭 남용 유료 양로시설-노인복지주택 혼재… 시설-돌봄형태 법적 체계 구축 필요 美, 헬스케어 포함 은퇴자 커뮤니티… 日은 돌봄-간병 지원 노인홈 발달 美 비컨힐 마을-日 지역포괄케어 등… ‘내집서 최후까지’ 서비스 확산 추세
지난달 23일자 디지털 100세 카페 ‘실버타운에 꽂힌 50대 한의사 부부’ 기사는 조회수(63만 회)도 상당했지만 비판적인 댓글이 무척 많았다. 무엇보다 주인공 부부가 말하는 실버타운과 독자들이 저마다 머릿속에서 그리는 실버타운이 너무 달랐다. 이참에 한국의 노인주거복지 현황을 점검하고 노후 주거의 요건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한국에는 실버타운이 없다
‘실버타운’이란 용어부터 문제였다.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주거복지시설은 △양로시설 △노인공동생활가정 △노인복지주택의 세 가지가 전부다. 양로시설은 다시 유료와 무료로 나뉜다. 법적으로 말하면 한국에 ‘실버타운’은 없는 것이다.한국에서 속칭 실버타운이라고 하면 고령자를 위한 아파트 혹은 레지던스 같은 시설을 뜻한다. 100가구 이상 규모에 각자 자기 집에서 살며 공동식당과 피트니스센터 등 커뮤니티시설이 있고 의료 인력이 상주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자립생활이 가능한 시니어(부부 중 1명이 60세 이상)가 입주하며 모든 비용은 입주자들이 부담한다. 이런 시설은 전국에 약 40곳인데, 대부분은 노인복지주택으로, 일부는 유료 양로시설로 등록돼 있다. 실버타운은 관련 통계를 내기 어려울 정도로 계통체계 없이 방치돼 있었다. 예컨대 최고급 시설인 ‘클래식 500’은 유료 양로시설로 등록돼 있다. 경기 수원 유당마을과 용인 노블카운티는 당초 유료 양로시설로 등록했다가 노인복지주택으로 변경했다. 첫 시니어타운(유당마을)이 생긴 1988년 당시 노인복지주택이란 개념이 없고, 유료 양로시설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분양형’과 ‘임대형’ 노인복지주택이 생겼지만 부실 운영으로 문 닫는 곳이 속출해 사회문제화하자 2015년부터 분양형이 폐지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인복지주택으로 인가받았지만 실제로는 일반 아파트로 변질된 실버타운도 여럿 있다.
여기에 작은 요양시설들이 너도 나도 ‘실버타운’이란 이름을 쓰고 있어 혼란을 부추긴다. 개중에는 미인가 시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독자들이 각자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기준으로 실버타운에 대해 정의 내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건강 그 이후에 대비하는 美 은퇴자 커뮤니티, 日 유료 양로원
미국 플로리다의 광대한 대지에 조성된 은퇴자 공동체 ‘더 빌리지’는 지금도 확장 중이다. 2010년 9만5000명이던 거주자는 2017년 12만5000명으로 30% 이상 늘었다. 위에서 본 더 빌리지. 사진 출처 더 빌리지 홈페이지
당장은 건강한 시니어들의 공동체라 해도 세월이 흐른 뒤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미국의 은퇴자 커뮤니티에는 지속적 돌봄(Continuing Care and Retirement Community·CCRC) 개념이 작동 중이다. 시니어들이 건강하게 입주해 일정 수준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받으며 건강을 지키고, 건강이 악화되면 타운 내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노화 정도에 따라 △자립생활형 △직원이 가사를 돕는 형 △24시간 간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형으로 주거 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
미국만큼 땅이 넓지 않은 일본에서는 유료 노인홈이 발달했다. 과거에는 건강이 나빠지면 다른 시설로 옮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개호(돌봄과 간병)가 지원되는 양로원이 늘어나고 있다. 같은 노인홈에 살면서 개호가 필요해지면 그 시설 직원에게 서비스를 받는 방식인데, 이 경우 개호 비용은 개호보험에서 지원해준다. 입소자 입장에서는 적은 부담으로 질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의 시니어타운은 건강할 때에만 활용할 수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일부 요양시설을 갖춘 곳(유당마을 더시그넘하우스 삼성노블카운티 시니어스타워 계열)이 있지만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이 많이 든다. 장기요양급여 중 시설급여는 노인의료복지시설(요양원,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에만 한정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2019년부터 시니어타운 거주자도 방문요양 방문간호 등 재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장기요양 3∼5등급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1, 2등급을 받아 집중적인 요양이 필요하면 시니어타운을 나와 요양원으로 옮겨야 한다.
○‘내 집서 늙어가기(Aging in place)’ 세계적 추세
정든 집에서 최후까지 지내겠다는 바람은 다른 많은 선진국 노인들에게서도 확인되는 공통된 현상이다. 일본에서는 초고령사회의 사회적 부담을 고려해 ‘지역포괄케어’라 해서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며 의료와 복지 서비스를 받는 형태가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 퇴직 즈음해서 고령자가 살기 좋은 형태로 대대적인 주택 리모델링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집 안에서 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고(배리어 프리), 욕실 바닥에 미끄럼 방지 시공을 하고 손잡이를 여기저기 다는 등. 일본 정부는 고령자주택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해준다.
미국 보스턴의 인구 1만 명 규모 마을 비컨힐의 은퇴자들은 이웃끼리 서로 돕는 회원제 비영리조직을 운영하며 ‘내 집에서 늙어가기’를 실천한다. 이웃과 어울리며 노후를 즐기는 회원들의 모임. 사진 출처 비컨힐 마을 홈페이지
○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은 노후 삶의 터전은
노년이라 해도 건강하고 활력 있는 시기에는 걱정할 일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도움이 필요한 시기가 온다. 지금은 별 부담 없는 세 끼 식사 준비가 버거워질 수도, 간병이 필요해질 수도 있다. 배우자와 사별해 어느 한쪽만 남게 되는 경우, 부부 중 누군가의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등 예기치 않은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일본 최고의 노후설계사로 꼽히는 요코테 쇼타는 저서 ‘노후의 연표(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중앙북스)’에서 노후 주거에 대해 어디에서(도시, 시골, 해외) 누구와(부부, 자녀와, 혼자) 어떤 집(주택, 아파트, 임대, 노인홈 등 돌봄시설)을 생각하고 늦기 전에 실행에 옮기라고 권한다. 그의 추천은 자녀와 살던 큰 집은 정리하고 병원 쇼핑 외출을 고려해 교통이 편리한 작은 아파트로 옮기되 자녀와 가까운 거리에서 사는 형태다. 고령이 될수록 시간이 남고 활동 폭이 좁아져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기 쉬워진다는 점에서 이웃과 친구, 갈 만한 장소 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