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삶의 기반이 된 플랫폼 안전 지키려면 독점 경계해야
김용석 산업1부장
카카오에 접수된 ‘먹통 사태’ 피해 사례가 닷새 만에 4만5000건을 넘겼다. 모아진 사례들은 그 자체로 우리 삶이 얼마나 단일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록이 될 것이다. 카카오에는 훌륭한 서비스 개발 가이드가 될 수도 있다. 방대한 데이터만으로는 읽어내기 어려웠던 이용자들의 시시콜콜한 속사정과 요구 사항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불만을 털어놓을수록 점점 더 벗어나기 어려워지는 관계라고나 할까.
먹통 사태에도 시급한 연락은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토록 큰 불편과 불안, 분노를 느낀 이유는 뭘까. 그 이유를 보면 카카오의 본원적 경쟁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다. 카톡은 단순한 메신저가 아니다. 그 안에 연결된 사람들 관계를 규정한다. 그 관계를 통해 우리는 일하고 돈을 벌 뿐 아니라 소속감과 연대감, 존재감을 얻는다. 우리의 가족애는 ‘가족 단톡방’ 대화 속에 존재한다. 직장인의 동료애는 ‘상사를 뺀 단톡방’에서 꽃핀다. 관계 맺음을 통해 나의 실존을 실시간으로 증명하는 창구의 폐쇄야말로 가장 큰 충격이 아니었을까.
이번 먹통 사태로 드러난 사실이 있다. 그토록 중요한 삶의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 시스템 위에 놓여 있었는지 확인했다. 화재 원인이 무엇이든, 리튬이온 배터리는 한번 과열되면 제어할 수 없는 폭탄으로 돌변한다. 그 배터리들 바로 위로 데이터센터의 생명선이나 다름없는 전력선이 지나가고 있었다. 카카오 서비스는 그 전력선 하나에 생명을 의지했다. 관리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판교 데이터센터 한 곳에 거의 모든 컴퓨터 서버를 모아 놓은 탓이다.
이런 지점들에서 우리는 독점 플랫폼의 혜택과 폐해를 동시에 발견한다. 단일 플랫폼에 메신저, 택시, 금융, 공공 서비스까지 모든 것을 의존했을 때 얻는 편리함과 효율성은 그 플랫폼에 거의 모든 사람이 모인 독점 상태라는 전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익이 커질수록 리스크가 커지는 역설적 상황.
먹통 사태 이후 온갖 규제가 거론되고 있다. 망 이원화를 의무화하는 등 일부 플랫폼 기업 대상 규제도 그중 하나다. 이런 규제는 군소 플랫폼의 진입 문턱을 높여 독점을 보호해주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규제는 시장 경쟁을 살리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플랫폼 기업은 플랫폼 내 경제 활동의 절대적 지배자다. 자사 서비스를 우대하면서 사업 범위를 무한 확장하는 불공정 행위가 손쉽게 일어난다. 결제 시스템, 상품 노출, 검색엔진 추천, 가상 비서 선택권 등 무엇이든 밀어줄 수 있다. 이를 규제해 소비자가 다른 서비스를 선택할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 기업 간 경쟁으로 계속 성장이 이어지게 해야 한다. 쉽지 않지만 플랫폼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규율하려는 시도가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플랫폼 의존을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삶은 단일 기업이 아니라 이렇게 규율된 경쟁 시장의 기반 위에서 훨씬 더 안전하게 영위될 것이다.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