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관계사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 사진공동취재단.
“증인은 수사기관에서는 (건설사의 사업신청 자격 배제를 위해) 김만배와 남욱을 보내서 유동규를 설득했다고 진술하고, 지금은 ‘톱-다운’ 방식으로 방침이 내려왔다고 진술을 바꿨는데 뭐가 맞나?”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 심리로 열린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 사건 61차 공판에서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관계사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 측 변호인은 증인으로 출석한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 회계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정 회계사는 “후자가 맞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따라 검찰은 건설사 배제 조항 등 공모지침서의 일부 내용을 ‘7대 독소조항’이라고 판단하고 대장동 5인방을 민간에 부당한 이익을 주기 위해 7대 독소조항을 공모지침서에 반영시킨 혐의(특경법상 배임) 등으로 지난해 기소했습니다. 검찰의 공소사실만 놓고 보면 공모 단계를 포함한 대장동 사업 전반에서 벌어진 배임 행위의 가장 ‘윗선’은 유 전 직무대리입니다.
그러나 정 회계사는 최근 법정에서 태도를 바꿔 공모 단계에서의 건설사 배제 결정 등 사업 관련 주요 결정들은 ‘바텀-업’ 방식으로 민간업자들의 요구사항이 반영된 결과가 아니라 유 전 직무대리보다 더 윗선에서 톱-다운 방식으로 내려진 것이란 취지로 증언한 것입니다.
● 정영학 “진술을 바꾼 게 아니고 사실을 파악한 것”
이날 정 회계사는 “그럼 처음에는 잘 모르면서 추측을 이야기한 것이냐”는 남 변호사 측 질문에 “처음에는 김 씨와 남 변호사가 말한 대로 (사업 결정이) 이뤄져서 그렇게 (바텀-업 방식으로)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또 “제가 방침이 내려와서 되는 것을 몰랐고 저희(민간사업자)가 논의한 것이 반영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도 했습니다. 민간사업자들이 건설사 신청 자격 배제를 원했고 이를 유 전 직무대리에게 전달한 것도 맞지만 실제로 이 덕분에 건설사 배제 결정이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에 남 변호사 측은 “증인 이야기가 자연스럽지 않다. 수사 당시 진술과는 증언이 다르다”고 지적하면서 “유 전 직무대리가 (민간사업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사 내부에서 성남시와 협의 등 일련의 절차를 거쳐서 건설사 배제 방침을 정한 것은 맞지 않으냐”고 물었습니다. 정 회계사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실제 공사에서 결정할 권한이 그 정도까지 없는 것으로 보이고 방침은 위에서 정해서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면서 “진술을 바꾼 것이 아니고 사실을 파악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유 전 직무대리 측이 대장동 주요 사업 내용의 최종 결정 권한이 성남시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당시 성남시장)의 역할을 부각하고 나선 지난달 24일 59차 공판에서도 정 회계사는 같은 취지의 증언을 했습니다. 이날 정 회계사는 “당시 건설사 신청자격 배제는 희망 사항이었고 반영이 잘 됐다”면서 “당시엔 그 결정이 실제 어떻게 이뤄졌는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유 전 직무대리 측이 “지금은 아느냐”고 묻자 정 회계사는 “위에서 지침이었던 걸로 파악한다. 유 전 직무대리와 상관없이 (결정된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습니다.
● 남욱, 정영학 신빙성 공격하며 ‘Lee‘ 적힌 정영학 메모 공개
화천대유 관계사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정 회계사는 이에 대해 “2013년 7월 2일 유 전 직무대리가 김 부원장, 정 실장과 다 상의해 (대장동이) ‘베벌리힐스’가 안 되도록, 저층 연립으로 개발되지 않도록 (당시 이 시장에게) 다 보고했다는 의미에서 그린 화살표”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이던 2013년 7월 1일 대장동에 저층 고급 연립주택을 조성해 ‘한국판 베벌리힐스’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유 전 직무대리가 바로 다음 날 김 부원장, 정 실장과 상의를 거쳐 이 대표에게 직접 “저층 연립주택으로 개발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보고했다는 겁니다. 당시 민간사업자들은 대장동에 아파트 단지를 짓기를 원했습니다.
남 변호사 측이 “보고했다는 말이 잘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자 정 회계사는 “(유 전 직무대리가) 이야기 다 했다. 시장님한테도 이야기했다”면서 “설명 드린 부분이 녹취록에 다 나와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선 25차 공판에서 재생된 정영학 녹취록에는 같은 날인 2013년 7월 2일 남 변호사가 정 회계사와의 통화에서 “유 전 직무대리가 이 대표에게 ‘베벌리힐스가 불가능하다’고 하고 이 대표는 ‘알아서 해라. 나는 공원만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고 전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곽상도 “왜 남욱 25% 지분이 ‘최고 많은’게 되나”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 사진공동취재단
이날 곽 전 의원 측 변호인은 증인으로 출석한 정 회계사에게 “(녹취록을 보면) 김 씨가 남 변호사 (대장동 사업) 지분을 25%로 정하면서 ‘최고 많아’라고 말한다”며 정 회계사에게 실제 각각의 지분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습니다. 정 회계사는 “저는 처음에는 김 씨 지분을 50%로 알고 있었고 나중에 본인 지분 안에 유 전 직무대리 몫이 있다고 얘기했다”며 “저는 16%, 남 변호사는 25%였고 김 씨는 (본인 지분) 50% 안에서 유 전 직무대리와 나눈 것으로 안다”고 했습니다.
이에 곽 의원 측은 “김 씨의 50% 지분 중에 유 전 직무대리의 지분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남 변호사 지분보다 적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바로 옆에 앉은 남 변호사가 며칠 전 대장동 사건 재판에서 직접 정 회계사에게 “김 씨가 ‘나도 (지분이) 12.5%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이 시장 측 지분이다’라고 얘기한 것을 듣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던 것을 연상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김 씨 측은 곧바로 반대신문 기회를 요청했습니다. 김 씨 측은 남 변호사의 주장이나 천화동인 1호의 실소유주가 따로 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김 씨 측 변호인은 “남 변호사가 지분이 ‘최고 많다’는 녹취록 상 김 씨 발언의 의미는 김 씨를 빼고 남 변호사의 지분이 제일 많다는 의미가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본인 지분(50%) 다음으로 남 변호사 지분(25%)이 많다는 뜻으로 말한 것일 뿐이란 겁니다. 이에 대해 정 회계사는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다음 대장동 사건 재판은 7일 열립니다. 이날은 정민용 변호사 측이 정 회계사에 대한 반대신문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