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동시 투발로 전후방 타격 능력 과시… 韓美 ‘융합방위’ 필요
북한이 3월 시험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뉴시스
北 도발, 전구 규모 대규모 종합훈련 성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 주재로 6월 22일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3차 확대회의가 열렸다. 뉴시스
북한의 이번 훈련을 분석하기에 앞서 지난해 6월 11일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의제였던 전략군 개편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당시 북한은 독립 군종인 전략군을 동해사령부와 서해사령부로 나누고, 각 사령부 관할 구역 내 육해공군 미사일 전력을 전략군 동해·서해사령부에 이관하는 편제 개혁을 천명했다.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동해사령부는 공격 능력에, 서해사령부는 방어 능력에 초점을 두고 편제 개편·작전 계획 수립을 추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 위원장은 전략군 개편을 미·중 패권 경쟁 구도에서 북한의 전략적 지위를 제고하기 위한 조치로 설명했다. 또한 미국의 비핵화 압박 목적이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중국을 압박하고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미국이 중국을 공격할 경우 서해를 담당하는 전략군 지휘부가 이를 방어하고 대응 타격을 수행하라”며 구체적인 작전 계획 지침까지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미사일 도발이 동해안·서해안 축선 일대에서 이뤄졌고, 지대지탄도미사일과 지대공미사일 발사가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3가지 벨트’ 벗어난 미사일 위협
한국군은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그간 큰 판단 착오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 플랫폼 수는 100~200기 안팎으로 평가됐고, 모든 미사일은 앞서 제시된 3가지 벨트에 따라 정해진 기지와 진지 일대에서만 발사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북한 미사일은 대부분 액체연료 방식이라 발사에 앞서 기립(erection) 후 연료·산화제 주입에 40분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고 단정 지었다. 그 틈을 이용해 탐지→확인→추적→조준→타격→평가로 이어지는 킬체인 순환체계를 구현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번 도발을 통해 북한은 자신들의 미사일 운용 전략이 완전히 바뀌었고, 한국군의 킬체인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그 이유를 찬찬히 살펴보자. 우선 미사일이 바뀌었다. 과거 북한의 남한 공격용 미사일 전력은 기껏해야 화성 5호(스커드 B)와 6호(스커드 C), 7호(노동) 정도였다. 그런데 이러한 전력은 5년 사이 10종 이상으로 늘어났다. 과거 전술탄도미사일 수준의 사거리를 가진 대구경 방사포 전력은 물론, 러시아의 이스칸데르(Iskander)나 한국의 에이타킴스(ATACMS), 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를 모방한 듯한 전술탄도미사일 등 새로운 고체연료 방식의 단거리 발사체가 우후죽순 등장했다. 이들은 모두 고체연료 방식이라서 발사 전 기립과 연료·산화제 주입 절차가 필요 없다. 이동 중 사격 명령을 받고 정차하면 미사일을 모두 발사하고 현장을 이탈하기까지 길어야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북한의 이동식 발사차량(TEL)은 한국군 킬체인 순환체계 6단계 중 탐지·확인 단계가 끝나기도 전 탑재된 미사일을 모두 쏘고 발사 진지를 이탈해 몸을 숨길 수 있다.
TEL도 크게 늘어났다. 한미 정보당국이 북한 TEL 수를 100~200여 기로 평가한 이유는 북한이 대형미사일 탑재를 위한 대형트럭을 자체 생산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은 거의 모든 트럭을 수입에 의존했기에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북한군 TEL은 스커드미사일 발사용으로 수입한 옛 소련제 MAZ-547계열 정도에 불과했다. 2010년 무렵 중국에서 WS-51200 차량 6대를 밀수한 뒤 이를 KN-08, 화성-14형 발사용으로 개조해 돌려 쓸 정도였다.
北 역동적 미사일 운용 능력 과시
2020년 10월 10일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11축(바퀴 22개) 이동식 발사차량(TEL). 뉴시스
TEL 급증과 함께 이제 미사일 기지가 발사 진지라는 개념도 사라졌다. 최근 몇 년간 북한의 미사일 도발 사례를 분석해보면 갱도 인근 발사 진지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사례는 거의 사라졌다. 대부분 일반 농지나 평야, 도로와 바닷가 등에서 발사됐다. 이번 11월 2일 미사일 도발에서 북한은 과거처럼 정해진 미사일 기지에서 정적(靜的)으로 미사일 전력을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역동적으로 미사일을 운용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이번 도발에서 북한은 유사시 한국군이 예측하지 못한 장소에서 예측하지 못한 물량의 미사일을 동원해 전후방 각지의 목표, 특히 공군기지를 집중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자랑했다. 더불어 이런 공격에서 생존한 한미 연합공중자산이 반격을 가하면 이를 격퇴할 수 있는 능력도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 연합방위 넘어선 ‘융합방위’ 필요
11월 2일 북한 미사일 도발에 맞서 우리 공군은 정밀 공대지미사일로 대응 사격에 나섰다. 뉴시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결심하고 TEL이 멈춰 기립을 시작했을 때 탐지·대응하는 것은 이제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북한의 대남 타격 수단에 대한 제압이 불가능해졌기에 이제 남은 방법은 그 수단을 움직이는 ‘의지’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 의지의 주체는 물론 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수뇌부다. 북한이 자신들의 군사력을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장기판의 기물(棋物)로 편입한 것처럼 대한민국도 미국과 ‘연합방위’ 체제를 격상해야 한다. 미군과 한 몸처럼 움직이는 ‘융합방위’ 체제로 말이다. 한국군이 충분한 수량과 성능의 정찰기·위성 등 감시정찰자산을 갖춰 북한 지도부의 의지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독자 정보망을 구축하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아예 우리 스스로 장기판에 올라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의 안전과 이익을 지키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63호에 실렸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