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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정부 ‘이태원 참사 책임론’ 피하려다 도리어 키웠다

입력 | 2022-11-05 10:32:00

[이종훈의 政說] “경찰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아냐” 발언 분노 유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0월 3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를 찾아 헌화했다. 동아일보 DB

“이 모든 원인은 용산 국방부 대통령실로 집중된 경호 인력 탓이다. (중략) 축제를 즐기려는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윤석열 대통령은 이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10월 30일 오전 8시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이태원 대규모 압사 참사 발생 10시간 만이다. 자초지종을 따지기에도 이른 시간이다. 누구보다 먼저 윤 대통령 책임론을 제기해 주목받고 싶은 마음과 대통령 탄핵을 공론화하고 싶은 마음이 합쳐진 결과일 것이다.

논란이 일자 남 부원장은 게시 30분 만에 해당 글을 삭제했다. 여론의 역풍을 의식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곧이어 같은 당 의원들에게 “소속 지방의원과 보좌진 등이 발언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 게시 등에 매우 신중을 기하도록 관리해달라”고 당부했다.
野 “초당적 협력” 약속했지만…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0월 30일 긴급 최고위원회에 앞서 “정부의 사고 수습과 치유를 위한 노력에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최고위는 초당적 협력의 일환으로 전국위원장 후보자 합동연설회 등 당내 선거 일정을 전면 중단하고 선거를 연기하기로 했다. 지역 축제성 행사 취소와 정치 구호성 현수막 철거도 예고했다. 국민의힘도 10월 30일 긴급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정쟁 중단을 예고한 터라 여야 정쟁 일시 휴전에 대한 기대감이 잠시 높아졌다.

하지만 정쟁 중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 대표는 11월 1일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장관, 시장, 구청장에 이르기까지 하는 말이 ‘우리는 책임이 없다’가 전부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통제 권한이 없어 못 했다는 윤 대통령의 말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참사 발생 사흘 만으로, 원인이 충분히 규명되지 않은 시점이다. 대형 참사가 발생한 뒤 대통령이 소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빨라도 너무 빨랐다. 초당적 협력을 약속하고 채 이틀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전략적 인내조차 참아낼 여유가 없었을까.

최재성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의 발언에서도 유사한 조급함이 읽힌다. 최 전 수석은 11월 1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애도 기간이 지나면 책임론에 대해 얘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고 말했다. 애도 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야당의 대대적인 공세가 있을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민주당은 이미 10월 26일 국회의원·원외지역위원장·당직자·보좌진 등이 총결집한 가운데 국회에서 ‘검찰독재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저열한 공작 수사와 야당 말살 획책에 굴하지 않겠다”며 강력한 대여투쟁을 선포한 상태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윤석열 정부 책임론까지 공세에 더하면서 민주당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월호 참사 책임론으로 고조된 국민적 분노에 최순실 게이트가 더해진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다. 민주당은 유사한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민주당은 참사 당일 경찰 인력 부족 문제를 집중 제기하고 있다. “대규모 인파 운집으로 사고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경찰이 인력을 충분히 투입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이 비판의 중심에 있었다면 이번에는 경찰이 초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태원 참사 발생 4시간 전인 오후 6시 34분부터 압사를 우려하는 신고가 11건이나 들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민주당의 지적이 사실일 개연성이 높아진 것이다. 민주당은 앞서의 시나리오를 실현해낼 수 있을까. 이는 전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대응에 달렸다.
갈림길에 선 尹 정부
윤 대통령은 당초 초동대응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 전 수석조차 앞선 인터뷰에서 “대통령으로서 이런 정도의 참사에 그렇게 대응한 것은 잘했고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이 화근이다. 이 장관은 사고 발생 직후 “예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통상과 달리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책임론을 피하려는 목적에서 한 말일 테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적 분노를 유발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초동대응으로 얻은 점수마저 잃은 것은 물론이다.

윤 대통령이 앞선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직한 처리’와 ‘신속한 공개’뿐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12 신고 사실이 확인된 직후인 11월 1일 현장 대응이 미흡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엄밀한 감찰과 수사 진행을 약속했다. 결과가 나오면 그에 상응해 처신하겠다며 자진 사퇴 가능성도 예고했다. 사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자세는 결국 분노만 더할 뿐이다.

이번 참사로 국민의 자긍심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긍심은 애국심의 근간이다. 국민은 정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것이다. 다만 정부의 대응이 과거 정부와 달랐으면 하는 바람은 있을 테다. 여야 정치권의 정쟁이 더 가속화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그 바람을 충족해줄 수 있을까.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63호에 실렸습니다]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