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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샤넬·구찌 같은 ‘패션하우스’ 꿈 이룬 우영미 “브랜드 유산 이어가는 공간 되길”

입력 | 2022-11-06 12:03:00


기다란 복도에 일렬로 나란히 세워진 책장들… 건물 1층 로비에 들어선 도서관 때문일까. 얼핏 출판사 같아 보이는 이곳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우영미(WOOYOUNGM)I’와 ‘솔리드옴므’의 신(新)사옥이다.


한데 복도를 가득 채운 책장에는 책이 아닌 두 브랜드가 여태껏 만들어온 옷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직원들은 마치 책을 빌리듯 브랜드의 전작(前作)을 빌린다. 마네킹 위에 옷을 입히고 대보며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해낸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좋은 레퍼런스는 결국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옷들입니다. 우리 브랜드가 그동안 일궈온 옷이라는 유산이야말로 브랜드를 무한히 새롭게 만드는 원천이 되어줄 거예요.”

우영미 솔리드옴므 대표는 2일 신사옥에서 만나 “나에게 영감을 줬던 책과 소품들을 직원들과도 나누고 싶었다”며 웃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우영미 솔리드옴므 대표(63)는 1988년 ‘솔리드옴므’를 론칭한 지 34년 만에 “패션하우스를 짓고 싶다”는 오랜 꿈을 이뤘다. 건축가와 함께 100번이 넘는 설계 회의를 거쳐 마침내 지난달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꿈에 그리던 신 사옥을 완공했다. 

2일 오전 사옥에서 만난 우 대표는 “브랜드를 창업했을 때부터 지금껏 간직하고 있었던 모든 스케치와 옷들을 축적하는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싶었다. 이제는 내가 없어도 ‘우영미’와 ‘솔리드옴므’라는 브랜드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명품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꿈대로 건물 1층에는 그가 29세에 브랜드를 창업할 때부터 간직해온 스케치 흔적들과 그에게 영감을 준 소품들이 마치 박물관처럼 진열돼 있다. 

우영미 솔리드옴므 대표가 신사옥 1층에 마련된 ‘우영미 아카이브’ 앞에 서 있다. 그는 “직원들이 책을 빌리듯 자유롭게 옷을 빌리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웃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샤넬, 구찌와 같은 명품 브랜드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사랑받는 이유는 최초의 디자이너가 떠나도 그가 남긴 유산이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이에요. 브랜드의 유산이 나날이 축적될 이 공간에서 직원들이 역사를 이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습니다.”

그의 손길로 빚은 신 사옥은 외관에서부터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한다. 붉은 색의 굵은 기다란 철제 선들이 건물을 끌어안듯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우 대표는 “우영미라는 브랜드는 남성과 여성, 동양과 서양의 구분 없이 이 모든 정체성을 감싸 안는 것이 특징”이라며 “경계를 짓기보다 경계 없이 이 모든 가치관을 포용하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위치한 ‘솔리드옴므’와 ‘우영미’ 신사옥 외경. 우영미 대표는 “소재와 패턴에서는 정교함을 추구하되 변화와 혁신에서는 담대함을 추구하는 브랜드의 가치관은 굵고 붉은 선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솔리드옴므 제공 


우 대표는 신사옥을 지으며 아차산 자락이 한눈에 펼쳐진 꼭대기 6층 명당을 자신의 집무실로 쓰는 걸 마다했다. 대신 그는 두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이 매일 회의를 열며 토론하는 2층에 자리 잡았다.  브랜드의 새로운 컬렉션 의상 샘플과 스토리보드가 줄지어 서 있는 창고 같은 공간 사이, 그의 방이 있다.


그는 “6층에서 근사한 풍경을 보며 잠시 혹하기는 했지만, 내가 6층에 올라가면 직원들과 거리가 더 멀어질 것”이라며 “아래로 마흔 살 차이 나는 직원들과도 거리낌 없이 소통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물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2층을 선택했다”고 웃었다.

테라스와 맞닿은 3층과 6층은 직원들에게 내줬다. 이전까지 강남구에 있었던 구 사옥에는 없었던 공간이 바로 ‘테라스’다. 우 대표와 인터뷰를 마치고 둘러본 테라스에서는 직원들이 모여 앉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직원은 “가끔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테라스에 노트북을 들고 나와 머리를 식힐 때가 있다”고 귀띔해줬다. 우 대표는 “그동안 숨 고를 시간도 없이 일해 온 직원들에게 숨구멍을 내주고 싶었다”며 “테라스에 나와 멍 때리는 직원들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며칠 전 한 직원이 테라스에 요가 매트를 펼쳐 놓고 하늘을 보며 누워 있더라고요. 그때 이 건물을 짓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다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거든요. 오히려 일의 경계를 허물 때 더 좋은 생각이 떠올라요. 패션에는 정답이 없거든요.”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