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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정리보단 ‘감정’ 표현에 집중”…4년만에 에세이 낸 신형철

입력 | 2022-11-06 13:41:00


ⓒ최충식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임을 어이할꼬.’

신형철 문학평론가(46)는 지난달 31일 4년 만에 펴낸 에세이 ‘인생의 역사’(난다)에서 고대 가요 ‘공무도하가’를 문헌이 아닌 시로 읽는다.


문헌 연구자들은 보통 주인공 백수광부를 무당으로 해석하지만, 신 평론가는 백수광부를 삶이 힘들어 자주 강가에 서 있는 남성이라고 상상한다. 백수광부의 처가 남편을 말리려 강가로 달려간 적도 여러 번 있었을 거라 짐작한다.


백수광부의 죽음을 목격한 뱃사공은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공무도하가’를 불렀을 거라 상상해본다. 신 평론가는 “나는 수천 년 전의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들어본 적 없는 그 먼 노래가 환청처럼 들린다”고 고백한다.

1일 전화 인터뷰로 만난 신 평론가는 정확한 표현을 고르기 위해 신중히 단어를 고르는 차분한 사람이었다. 그는 “공무도하가는 현대 예술가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현재성이 풍부한 시”라고 꾹꾹 눌러 말했다.

“가수 이상은(52)은 노래 ‘공무도하가’를 불렀고, 작가 김훈(74)은 장편소설 ‘공무도하’(2009·문학동네)를 썼으며, 진모영 감독(52)은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찍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끊임없이 감동을 주는 만큼 다시 읽을 필요가 있는 문학이란 뜻이죠.”


신작엔 25편의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시 25편과 이에 얽힌 작품이 담겨 있다. 황동규(84), 최승자(70), 나희덕(56) 등 한국 유명 시인의 작품뿐 아니라 미국 가수 밥 딜런(81)과 한국 가수 윤상(54)의 노랫말을 시로 해석한다. 대중에겐 소설가로 널리 알려진 한강(52)의 시를 다룬 것도 눈길이 간다.

“잘 모르시는 분도 있지만 한강은 등단을 시로 먼저 했어요. 소설조차 시적으로 쓰는 경계가 없는 작가죠. 시집은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문학과지성사) 단 한 권이지만 의미 있는 시를 골라 넣었죠.”

그는 에세이 ‘느낌의 공동체’(2011·문학동네) ‘정확한 사랑의 실험’(2014·마음산책)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문학평론이 힘을 잃은 시대에도 책이 꾸준히 팔려 ‘스타 문학평론가’로 불린다.


신작은 예약판매만으로 온라인 서점 알라딘 종합 2위에 올랐고, 출간 1주일 만에 2만 부가 팔렸다. 이유를 묻자 그는 부끄러워하며 답했다.

“평론가로서 ‘개념’을 정리하는 훈련도 받았지만, 문학작품을 따로 읽으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법도 배운 것 같아요. 저 역시 문학작품을 읽은 뒤 이를 개념화하기보단 제가 느낀 감정을 문장으로 쓰는 데 성취감을 느끼고요. 작가적인 색채가 강한 걸 독자들이 좋아해주신 것 아닐까 싶네요.”

“인생은 시처럼 행과 연으로 이뤄져 있다”는 그에게 ‘문학’의 의미를 물으니 담담한 답변이 돌아왔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 외에 거의 모든 시간을 문학작품을 읽고 글을 쓰는데 사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게 문학은 그야말로 ‘직업’이죠.”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