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 새벽별, 저녁별, 개밥바라기….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이 천체는 사실 ‘별’이 아니다. 해 뜨기 직전이나 해가 진 직후 밝게 빛나는 ‘금성’이다.
최근 기초과학연구원(IBS)에 30대 여성 행성 과학자가 이끄는 금성 연구조직이 신설됐다. IBS의 첫 지구과학 분야 연구단으로 올해 6월 발족된 ‘기후 및 지구과학 연구단’의 ‘행성대기그룹’이다. 국내 정부출연연구기관에 금성 연구조직이 발족된 건 처음이다.
IBS는 미래세대의 연구리더를 육성하기 위해 매년 연구단장에 준하는 CI(Chief Investigator·수석연구자급 연구원)를 선정해 스스로 연구주제를 정하고 조직도 구성하는 ‘전권’을 준다. 연세대 대기과학과 학·석사를 마치고 독일 막스플랑크 태양계 연구소를 거쳐 브라운슈바이크 공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유럽우주국(ESA)과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등에서 금성을 연구해온 이연주 CI(39)는 지구의 미래를 금성에서 찾고자 IBS 행성대기그룹을 맡았다. 1일 대전 IBS 본원에서 그를 만났다.
대전 IBS 본원에서 포즈를 취한 이연주 IBS 행성대기그룹 CI. 대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달과 화성에 가겠다고 시끌벅적한 요즘, 왜 금성인가.
“금성은 ‘사악한 쌍둥이(Evil Twin)’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금성은 크기와 부피가 지구와 비슷하지만 기후는 완전히 다르다. 지구의 90배가 넘는 대기압과 황산 구름, 460도 이상의 고온에 시달린다. 과거에 바다가 존재했을 수도 있는 금성은 온실효과로 인해 지금은 ‘극한의 불지옥’이다. 두 행성이 왜 달라졌는지 밝혀내면 지구의 미래를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금성 연구의 르네상스가 왔다’는 말이 들린다.
“1980년대 옛 소련의 베네라 탐사선이 금성에 착륙해 금성 지표가 메말랐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사실상 금성 탐사가 중단됐다. 그런데 지난해 ESA는 ‘인비전’, 미국우주항공국(NASA)은 ‘다빈치+’와 ‘베리타스’라는 금성 탐사선을 보낸다는 계획을 각각 발표했다. 러시아도 1984년 종료된 베네라 계획을 잇는 ‘베나라-D 계획’을 내놓았고 인도는 슈크라얀 1호라는 금성 탐사선 발사를 준비 중이다. 최근 금성의 새로운 면모가 포착됐기 때문이다.”
ESA의 인비전은 금성의 표면과 지하 및 대기를 연구한다는 계획이다. NASA의 ‘다빈치+’는 금성 대기를 통해 행성의 형성과 진화를 연구하고 과거 바다가 있었는지 여부를 살피게 된다. ‘베리타스’는 금성의 암석 구성 등 지질학적 역사를 탐사할 계획이다.
―금성의 새로운 면모라니.
“유럽 최초의 화성 탐사선 ‘마스 익스프레스’(2003년)의 카피 제품을 금성 탐사에 이용한 게 2005년부터 2014년까지 활약한 ESA의 금성 탐사선 ‘비너스 익스프레스’였다. 이 탐사선의 활동을 통해 금성에 현재 화산 활동이 활발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 금성 연구의 추세는.
“금성의 구름 상층에 미확인 흡수체가 관측되고 있다. 금성 관측 화상에서 어두운 부분은 미확인 흡수체가 자외선을 많이 흡수하는 부분이다. 자외선을 흡수하는 양이 달라지면 금성 대기가 변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금성에도 기후변화가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미확인 흡수체의 정체를 풀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JAXA가 2010년 발사한 금성 탐사선 ‘아카츠키’(샛별이라는 뜻)가 전 세계에 금성 관측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소련, 미국, 유럽에 이어 네 번째로 금성 주변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아카츠키의 수명이 언제 다할지 모르기 때문에 금성 관측의 플랜B가 필요하다.”
―ESA와 JAXA에서 금성 연구를 했는데 왜 한국에 왔나.
“ESA에 비너스 익스프레스 프로젝트를 제안한 사람은 독일 연구소에 다닐 때 내 상사였다. 한국 IBS가 연구자에게 온전한 자율권을 주는 공고를 낸 걸 보고 도전했다. 국내 스타트업들과 협업해 초소형위성(큐브샛)을 띄워 올려 금성을 관측하겠다.”
대전 IBS 본원의 비석 앞에 선 이연주 IBS 행성대기그룹 CI. 대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금성 연구를 통해 꿈꾸는 미래는.
“매일 금성의 관측 이미지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지구라는 아름다운 행성에 사는 것이, 서로 인연을 맺고 사랑한다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금성을 몰랐다면 지구가 얼마나 축복된 곳인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지구에 극단적인 온난화가 발생한다면 지금의 금성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한국도 금성 연구 자료를 만들어내서 지구의 미래를 위해 국제사회와 공동 연구할 수 있게 되기를 꿈꾼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