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하늘이 도와준 것 같아요.”
지난달 26일 경북 봉화군 재산면 아연 광산에서 발생한 매몰 사고로 지하 190m에 고립됐다가 221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한 조장 박정하 씨(62)는 6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동병원에서 치료 중인 그는 회복 속도가 빠른 편이다. 그러나 장시간 어두운 곳에 머물렀던 탓에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종일 안대를 쓸 만큼 외부 접촉을 자제하고 있고, 심리 치료도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박 씨는 “반드시 살아나가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그곳에서 살아남은 것 같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달 26일 매몰 사고로 고립됐던 광원 2명이 4일 오후 11시 3분 경북 봉화군 재산면 광산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봉화=뉴시스
―현재 상태는 어떤지?
“식사량을 한 번에 늘리면 대사 장애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해서 소량의 죽과 반찬을 조금씩 먹고 있다. 시각 기능 저하 우려로 안대를 쓰고 생활하고 있다. 다만 햇빛 노출을 피하면 돼 식사 시간에는 커튼을 치고 잠시 안대를 벗고 편히 식사하고 있다. 주치의 말로는 기본 체력이 좋아 회복속도는 빠르다고 들었다. 다만 아직도 눈을 감고 있거나 밤이 되면 어두컴컴했던 갱도 안이 생각나 불안하다. 잠 들었다가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깨기도 한다. 심리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커피믹스 30봉으로 고립 갱도에서 버텼다고 들었다.
“정확히 몇 봉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커피믹스는 20~30봉 정도 들고 갔고 물도 10L 정도 챙겼다. 보통 작업 시에는 지하에 오래 머무는 편이어서 작업자들이 커피믹스나 컵라면 등을 지참한다. 지하 갱도에 전기 콘센트와 커피포트가 있어서 그걸로 끓여 먹는다. 하지만 고립 사고 이후 전기가 끊겼다. 그래서 나무를 구해 모닥불을 피웠고 커피포트 밑 부분 플라스틱을 제거한 뒤 쇠 부분을 달궈 물을 끓여서 커피를 만들어 먹었다.”
―모닥불을 피운 나무와 천막을 친 비닐은 어떻게 구했나.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 사고로 고립됐다 221시간 만에 생환해 안동병원에서 치료 중인 작업반장 박 씨가 5일 오후 병실에서 망막 보호를 위해 안대를 착용한 채 휴식하고 있다. 박씨 가족 제공 2022.11.5/뉴스1
―본인은 27년 경력 베테랑 광원이지만 함께 고립됐던 보조작업자(박모 씨)는 경력이 짧았는데….
“(박 씨가) 입사한 지 며칠 안 돼 형님 동생 하며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시키고 있었다. 사고가 났을 때 동생이 당황하고 놀라더라. 내가 별일 아닌 것처럼 대처하면서 동생도 안정감을 찾았다. 동생에게 ‘광산에서는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진 않는데 가끔 발생한다’라고 이야기하면서 마음을 가라 앉혔다. 사고 당일 붕괴는 2시간 동안 지속됐다. 우리가 제일 하부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헤드렌턴을 켜서 위를 쳐다보니 꽉 막혀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했다.”
―탈출 시도는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절망적인 마음도 들었을 것 같다.
“사실 구조 직전에 희망을 완전히 잃은 기분이었다. 동생과 탈출구를 찾을 때 헤드랜턴을 번갈아 가면서 키면서 배터리를 아꼈는데 어느 순간 반짝반짝하더니 완전히 꺼지더라. 우리가 갖고 있던 유일한 식량이었던 커피믹스도 완전히 바닥났고 헤드랜턴 배터리까지 다 써버렸다는 생각에 희망이 없어진 것 같았다. 그 순간에는 동생과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그 이후에 10여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막힌 암석 구간 반대편에서 발파 소리가 울렸다. 내가 동생에게 ‘무슨 소리 안들리냐’라고 했는데 동생은 못들었다고 했다. 10여분 뒤에 막혀 있던 암석 구간에서 불빛이 보이면서 동료가 ‘형님’하면서 달려오더라. 동료와 얼싸안고 엉엉 울었다.”
―기적적으로 생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죽는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어떻게든 살 거라고 생각했다. 발파 시도는 실패했지만 우리는 힘이 없던 상황에서도 막힌 구간으로 괭이를 들고가 10m 정도를 파냈다. 반드시 살아 나가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그 곳에서 살아남은 것 같다.”
―앞으로 계획은?
“1980년대부터 광산에서 일해왔다.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참 한마디로 너무 불쌍하다. 그들이 인간적인 조건에서 근무할 수 있고 최대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다만 광산에서 다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당장 생각나는 것은 뜨끈한 밥 한끼에 소주 한잔이다. 퇴원하고 부모님 산소에 인사드리러 가겠다.”
안동=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