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히잡 시위’ 이란, 사우디 공격說… ‘외부의 적’으로 시선 돌리기[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2-11-07 03:00:00

反정부 시위 확산… 국제 이슈 조짐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의 반정부 시위대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에서 최고지도자에 대한 공개 비판은 지극히 이례적이어서 민심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보여 준다(왼쪽 사진). 지난달 8일 해킹으로 인해 하메네이를 비판하는 영상이 송출된 공영방송의 화면을 캡처한 모습. 테헤란=AP 뉴시스·사진 출처 트위터

강성휘 카이로 특파원


《‘히잡 의문사’로 촉발된 이란 반정부 시위가 두 달째 이어지고 있다. 이란 당국의 강경 진압에도 대학생부터 에너지 산업 노동자와 교사까지 가세한 데다 생활고를 호소하는 목소리까지 더해지며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퇴진 요구로 번졌다.

반정부 시위는 이제 국제 이슈로 점화될 조짐이다. 이란 정부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최대 위기를 서방 탓으로 돌리며 국내 시선을 외부로 돌리려 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은 유혈 강경 진압을 이유로 대(對)이란 제재 강화에 나섰다. 시아파 핵심국 이란이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를 공격하려 한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이슬람권에서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 ‘혁명 우군’ 석유 노동자도 시위 동참


이란 소수민족 쿠르드계 출신 마사 아미니(22)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올 9월 13일 수도 테헤란에서 도덕 경찰에 체포됐다 사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됐을 때만 해도 반정부 시위가 이렇게까지 커지고 길어질 것으로 예측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정교(政敎)일치 이란 정부의 과도한 억압에 불만을 품고 있던 대학생들은 아미니 의문사 사건을 여성 인권 문제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도 테헤란을 비롯해 쿠르드족 밀집지역 사난다지주(州) 쿠르디스탄 등 전국 대학 수십 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대학 캠퍼스에서 경찰과 시위 학생들이 충돌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은 온라인으로 꾸준히 올라왔다. 이란 반정부 성향 인권단체 인권운동가통신(HRANA)에 따르면 132개 지역 122개 대학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다. 고등학생들도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시위대는 이제 하메네이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핵 개발에 대한 서방 제재로 생활고가 심해지면서 생계에 지친 노동자 교사까지 가세했다. 지난달 22일 이라크 접경 사탕수수 공장과 남부 지역 철강 공단에서 동조 파업이 벌어졌고 이튿날에는 전국 각급 학교 교사들이 파업했다. 일부 지역 석유산업 노동자도 동조 성격의 파업을 벌이고 있다. 특히 이슬람 혁명 당시 든든한 우군이던 석유 노동자가 본격적으로 반기를 들게 된다면 이란 정부에 큰 충격을 던질 수 있다. 한 이란 인권운동가는 트위터에 “파업으로 체포되는 석유 노동자가 늘어 석유산업이 타격을 받았다”고 올렸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용직 노동자와 공무원까지 반정부 시위에 동참하면 이란 정부가 중대한 위험에 빠져들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시위 양상도 다양하다. 지난달 8일에는 한 해커 집단이 이란 국영방송을 사이버 공격해 하메네이를 비판하는 영상이 10초가량 전파를 탔다. 이즈음 온라인에는 테헤란 도심 분수대 물이 붉게 물든 사진들이 급속히 퍼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붉은 물은 권리를 위해 여성이 흘린 피를 상징한다”며 한 예술가가 시위에 동참하며 벌인 퍼포먼스라고 전했다.

○ 재판 한 번에 사형선고 받기도

이란 정부는 강경하다. 지난달 29일 호세인 살라미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이 “거리로 나오지 마라. 오늘이 폭동 마지막 날”이라며 최후통첩을 한 뒤 진압 강도가 더 세졌다. 이달 2일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공개한 영상에서는 이란 경찰 10여 명이 남성 시위자를 경찰봉으로 때려 쓰러뜨린 뒤 오토바이를 타고 신체 일부를 밟고 지나갔다. 경찰이 이 남성을 향해 산탄총을 발포하는 장면도 담겼다.

시위대를 향한 실탄 사격은 시위 초기부터 있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아미니 사망 40일째인 지난달 26일 경찰은 아미니 묘역에 모인 시위대 1만여 명을 향해 총을 쐈다. 영국 BBC방송은 경찰이 추모객들을 사살했고 수십 명을 체포했다고 전했다.

HRANA 및 노르웨이에 기반을 둔 이란휴먼라이츠(IHR)에 따르면 시위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미성년자 44명을 포함해 300명 넘게 숨졌으며 1만4000여 명이 연행됐다.

지난달 15일에는 반정부 시위자가 많이 잡혀 있던 테헤란 에빈교도소에서 의문의 화재가 발생해 최소 60명이 죽거나 다쳤다. IHR는 “수감자 신변이 매우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미국 이란인권센터(CHRI)는 “수감자가 살해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체포된 시위대 2000여 명은 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골람호세인 모세니 에제이 이란 법무장관은 이들을 ‘단순 불만 표출자’와 ‘외국에 의존한 정권 전복 기도 인물’로 구분하겠다고 밝혔다. 후자의 경우 ‘손발절단형(刑)’이나 사형까지 받을 수 있다. 시위 도중 경찰을 차로 들이받으려 한 혐의로 체포된 모하마드 고바들로(22)는 재판 한 번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밖으로 시선 분산하려는 이란 정부

이란 정부는 강경 진압을 하면서 동시에 책임 소재를 밖으로 돌리는 양동작전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외부에 적을 만들어 내부 불만을 잠재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메네이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같은 지도자들은 미국과 서방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등 주변국이 반정부 시위를 선동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라이시 대통령은 올 9월 28일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이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며 “적들이 국민 단합을 해치려고 서로 다투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나세르 카나니 외교부 대변인도 줄곧 “미국과 유럽이 거짓 선동으로 폭도를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방은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시위 탄압을 주도한 이란 내무장관과 혁명수비대 주요 인사들, 헤다야트 파르자디 에빈교도소 소장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또 이란을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에서 축출할 방침이다. 유럽연합(EU)도 혁명수비대를 테러단체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란 정부가 수니파 종주국이자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를 공격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WSJ는 최근 사우디와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란이 사우디 일부 지역과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이라크 쿠르디스탄 에르빌을 공격하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전했다. WSJ는 “이란의 임박한 공격으로 사우디와 미국이 초비상 상태에 돌입했다”고 했다. 이란 정부는 “전혀 근거 없는 보도”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서방은 이란이 시위 선동 책임을 물어 이라크 일부 쿠르드족 거주지역을 탄도미사일과 드론(무인항공기)으로 폭격한 점 등을 볼 때 실제로 사우디를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우려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미국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란 반정부 시위를 놓고도 양국이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더 큰 국제적 분쟁을 부를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지난달 26일 브리핑을 통해 “러시아가 이란 저항 세력을 무너뜨리는 데 다양한 지원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며 “러시아가 이란 당국 시위 진압 훈련을 지원하려는 징후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그동안 수차례 크고 작은 반정부 시위를 겪은 이슬람공화국(이란)이 이번 시위를 계기로 무너질지는 확실하지 않다”면서도 “이란과 국제정치 구도를 변화시키는 분명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성휘 카이로 특파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