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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우승에 목마른 LG는 왜 ‘실패한’ 염경엽을 선택했을까[이헌재의 B급 야구]

입력 | 2022-11-07 11:45:00


SK 감독 시절의 염경엽. 동아일보 DB


누가 봐도 깜짝 뉴스였습니다. 단장을 비롯한 구단 관계자들마저 발표 전까지 잘 모르고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한국시리즈 우승에 목마른 LG 트윈스의 선택은 염경엽 KBO 기술위원장이었습니다. LG는 6일 신임 염경엽 감독과 계약기간 3년에 총액 21억 원에 계약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팬들의 여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듯 합니다. LG가 전임 류지현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한 이유가 한국시리즈 진출 실패였기 때문입니다. 정규시즌 막판까지 선두 다툼을 했던 LG는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했지만 키움 히어로즈에게 1승 3패로 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2년 내내 정규시즌에 좋은 성과를 냈던 류지현 전 감독이 팀을 떠나게 된 이유이지요. LG의 목표는 오직 하나, 1994년 이후 이루지 못했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있는 여러 명의 인물이 하마평에 올랐습니다. 삼성 시절 두 차례 우승을 이끌었던 선동열 전 감독과 지난해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3번이나 우승했던 김태형 전 두산 감독이었지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데려온 인물은 결국 염경엽 감독이니 팬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넥센 감독시절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염경엽 감독. 동아일보 DB

‘감독’ 염경엽은 분명 장점이 많은 지도자입니다.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시절 한 ‘염갈량’이란 별명으로 불리며 약체로 평가받던 팀을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습니다. 2013년 넥센을 사상 첫 가을야구로 이끌었고, 이듬해에는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밟았지요.

하지만 ‘한국시리즈 감독’ 염경엽으로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습니다.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 넥센은 삼성 라이온즈에 2승 4패로 패했습니다. ‘업셋’을 하지 못했지만 어쨌건 찾아오기 힘든 기회를 놓친 건 사실입니다. 

또 한 번의 좋은 기회는 SK 와이번스 사령탑이던 2019년입니다. 바로 전해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를 고스란히 유지한 채 맞이한 2019년에 SK는 시즌 초반부터 승승장구하며 1위를 굳게 지켰습니다. 하지만 8회 중순 2위권 팀에 9경기 차로 앞서 있던 상황에서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연패를 거듭하며 결국 두산에 따라잡혔고, 정규시즌 마지막 말 2위로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남아 키움과의 플레이오프에서는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3전 전패로 탈락했습니다. 

당초 LG 프런트가 정규시즌 직후 염 감독에게 제안한 자리는 육성총괄코디네이터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류 전 감독의 재계약이 유력해 보일 때였습니다. 하지만 LG가 키움에 1승 3패로 패한 뒤 LG는 4일 류 감독과의 재계약 포기를 알렸고, 이틀 뒤 염 신임 감독 선임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는 구단 및 그룹 최고위층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패션 감각을 갖고 있는 염경엽 감독. 동아일보 DB

그런데 아주 오래 전부터 야구계에서는 “염 감독이 언젠가는 LG 감독을 할 것”이라는 말이 돌긴 했습니다. LG 그룹 최고위층이 염 감독을 무척 아낀다는 것이었지요. 

그 동안 지켜본 염 감독에게는 다른 야구인들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재능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해내는 능력이지요. 선수를 거쳐, 프런트, 코치, 감독에 단장까지 해 본 염 감독은 언제나 꾸준히 배우려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은 그는 자신이 머리에 갖고 있는 것들을 상황에 맞게, 사람에 따라 잘 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감독 시절 경기 전 인터뷰에서 많은 기자들이 뭔가 하나나도 배우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선수들에게도, 코치들에게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합니다. 앉은 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야구 이론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와 대화를 하다보면 야구에 대한 박식함과, 야구에 대한 열정을 느끼게 됩니다. 야구를 정말 좋아하는 그룹 최고위층이라면 어떨까요.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요. 이미 여러 차례 감독을 역임했고, 또 새 자리가 생기면 항상 감독 또는 단장 후로로 거론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야구 대화가 이론이라면, 감독 자리는 실전입니다. 이미 두 차례 실패를 맛본 염 감독으로서는 이제는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팬들과 구단의 바람에 답해야 합니다. 계약 기간은 3년이지만 거의 매년이 살얼음판 승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2년 후면 LG가 마지막 정상에 오른 지 정확하게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