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리던 손님도 “식비 절약” 발걸음 ‘무료배급’ 이용 최근 5, 6배 급증 수급자는 물론 일반인-대학생 늘어 경제난에 내각 지지율 36% ‘최저’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 싸게 팝니다” 7일 일본 도쿄 오타구의 한 식료품 매장에서 유통기한이 2개월 이상 지난 정어리 통조림이 개당 106엔(약 1000원, 소비세 제외 가격은 99엔)에 팔리고 있다. 이 통조림은 일반 매장에선 300엔 이상에 팔린다. 이곳은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지난 식품 중 안전에 문제가 없는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해 인기가 높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7일 일본 도쿄 오타(大田)구의 한 식료품 매장. 평범한 동네 슈퍼마켓처럼 보이는 이곳에 소비자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제품들이 쌓여 있었다. 일반 매장에선 150엔(약 1420원)인 녹차를 52엔(500원)에, 정어리 통조림은 반값 이하인 106엔에 팔았다.
이곳에서 파는 제품의 상당수는 유통기한을 넘긴 것들이다. 대부분 신선식품이 아닌 가공식품이어서 유통기한이 지나도 큰 문제가 없다고 보는 소비자가 많다. 사장 마쓰이 씨는 “다들 식비를 줄이겠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꺼리던 손님들도 지금은 자주 찾아온다”고 말했다. 일본은 유통기한이 경과한 식품을 판매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지 않고 있다.
선진국 중 물가가 가장 안정적이던 일본에서 식품, 생필품 가격이 들썩이면서 서민 생활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파는 매장이 인기를 끄는가 하면 무료 음식을 나눠주는 배급소도 성황이다.
○ 식품 무료 배급소 연일 인파
매주 토요일마다 도쿄 신주쿠구 도쿄도청 앞에서는 한 시민단체가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빵, 채소 등 식품 8종류를 담은 봉지를 나눠준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2020년 4월만 해도 100명 안팎이 이 봉지를 받아 갔다. 그러나 지난달 29일에는 6배에 달하는 631명이 받아 갔다. 이곳에서 무료 배급이 실시된 뒤로 가장 많은 수치였다. 과거에는 노숙인, 생활보호대상자(한국의 기초생활수급자) 등이 주로 식료품을 타 갔다. 최근에는 대학생, 일반인들도 받아간다. 도쿄 이외 지역도 마찬가지다. 북동부 센다이시에서 빈곤층에 식량을 나눠주는 한 시민단체가 최근 시내 모든 대학에 안내문을 보낸 결과, 3개월간 이 단체에 들어온 식량 제공 요청의 절반이 학생들로부터 나왔다.
곤궁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의 사연 또한 최근 부쩍 늘었다. NHK에 따르면 한 시민단체는 아이 생일에 무료로 케이크를 선물해주는 신청을 받고 있다. 1개월 만에 300건의 신청이 몰렸다.
‘작은아이 첫돌에 케이크 살 돈이 없어 식빵에 요구르트를 발라 준비했는데 큰아이가 울었다’ ‘케이크를 못 사 그림을 그려 축하해주는 내 신세가 서글프다’ 등의 생계형 사연이 속속 접수됐다. 6세 아이를 키우는 요코 씨는 “올해만 가스비가 3번 오르고 밀가루 값도 급등했다. 생계가 어려워 아이 생일 케이크를 포기했다가 응모했다”고 했다.
○ 경제난 여파로 기시다 내각 지지율 최저
장기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임금이 정체된 일본은 조금만 물가가 올라도 서민들의 고통이 크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8월 실질임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하락했다. 벌써 5개월 연속 감소세다. 명목 임금이 소폭 올라도 물가가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오른 여파로 풀이된다.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정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7일 발표된 요미우리신문의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의 지지율은 36%에 그쳤다. 기시다 총리가 지난해 10월 취임한 후 요미우리 조사로는 가장 낮은 수치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도쿄=김민지 특파원 mettym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