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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고물가에… 유통기한 넘긴 싼 식품 인기, 무료배급소 북적

입력 | 2022-11-08 03:00:00

꺼리던 손님도 “식비 절약” 발걸음
‘무료배급’ 이용 최근 5, 6배 급증
수급자는 물론 일반인-대학생 늘어
경제난에 내각 지지율 36% ‘최저’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 싸게 팝니다” 7일 일본 도쿄 오타구의 한 식료품 매장에서 유통기한이 2개월 이상 지난 정어리 통조림이 개당 106엔(약 1000원, 소비세 제외 가격은 99엔)에 팔리고 있다. 이 통조림은 일반 매장에선 300엔 이상에 팔린다. 이곳은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지난 식품 중 안전에 문제가 없는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해 인기가 높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7일 일본 도쿄 오타(大田)구의 한 식료품 매장. 평범한 동네 슈퍼마켓처럼 보이는 이곳에 소비자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제품들이 쌓여 있었다. 일반 매장에선 150엔(약 1420원)인 녹차를 52엔(500원)에, 정어리 통조림은 반값 이하인 106엔에 팔았다.

이곳에서 파는 제품의 상당수는 유통기한을 넘긴 것들이다. 대부분 신선식품이 아닌 가공식품이어서 유통기한이 지나도 큰 문제가 없다고 보는 소비자가 많다. 사장 마쓰이 씨는 “다들 식비를 줄이겠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꺼리던 손님들도 지금은 자주 찾아온다”고 말했다. 일본은 유통기한이 경과한 식품을 판매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지 않고 있다.

선진국 중 물가가 가장 안정적이던 일본에서 식품, 생필품 가격이 들썩이면서 서민 생활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파는 매장이 인기를 끄는가 하면 무료 음식을 나눠주는 배급소도 성황이다.
○ 식품 무료 배급소 연일 인파
매주 토요일마다 도쿄 신주쿠구 도쿄도청 앞에서는 한 시민단체가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빵, 채소 등 식품 8종류를 담은 봉지를 나눠준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2020년 4월만 해도 100명 안팎이 이 봉지를 받아 갔다. 그러나 지난달 29일에는 6배에 달하는 631명이 받아 갔다. 이곳에서 무료 배급이 실시된 뒤로 가장 많은 수치였다.

이곳에서 식품을 받아 간 한 남성은 “전기·가스비도 내는 게 어렵다. 올해는 특히 물가가 올라 여기 오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노숙인, 생활보호대상자(한국의 기초생활수급자) 등이 주로 식료품을 타 갔다. 최근에는 대학생, 일반인들도 받아간다. 도쿄 이외 지역도 마찬가지다. 북동부 센다이시에서 빈곤층에 식량을 나눠주는 한 시민단체가 최근 시내 모든 대학에 안내문을 보낸 결과, 3개월간 이 단체에 들어온 식량 제공 요청의 절반이 학생들로부터 나왔다.

곤궁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의 사연 또한 최근 부쩍 늘었다. NHK에 따르면 한 시민단체는 아이 생일에 무료로 케이크를 선물해주는 신청을 받고 있다. 1개월 만에 300건의 신청이 몰렸다.

‘작은아이 첫돌에 케이크 살 돈이 없어 식빵에 요구르트를 발라 준비했는데 큰아이가 울었다’ ‘케이크를 못 사 그림을 그려 축하해주는 내 신세가 서글프다’ 등의 생계형 사연이 속속 접수됐다. 6세 아이를 키우는 요코 씨는 “올해만 가스비가 3번 오르고 밀가루 값도 급등했다. 생계가 어려워 아이 생일 케이크를 포기했다가 응모했다”고 했다.
○ 경제난 여파로 기시다 내각 지지율 최저
장기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임금이 정체된 일본은 조금만 물가가 올라도 서민들의 고통이 크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8월 실질임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하락했다. 벌써 5개월 연속 감소세다. 명목 임금이 소폭 올라도 물가가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오른 여파로 풀이된다.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정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7일 발표된 요미우리신문의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의 지지율은 36%에 그쳤다. 기시다 총리가 지난해 10월 취임한 후 요미우리 조사로는 가장 낮은 수치다.

최근 정부가 가구당 전기료를 20% 지원하는 종합 경제 대책을 발표했지만 지지율 하락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규모 경제 대책으로 지지율 하락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기시다 내각과 집권 자민당의 기대감이 컸지만 최저 수준의 지지율에 낙담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요미우리는 지적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도쿄=김민지 특파원 mettym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