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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과 180도 달라진 SCM, 한미 동맹에 주는 교훈[신규진 기자의 국방이야기]

입력 | 2022-11-08 03:00:00

한미 국방장관이 3일(현지 시간) 미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방문해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 전략폭격기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국방부 제공

신규진 기자


군 내부에선 역대 최악의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로 2년 전 워싱턴 펜타곤(미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52차 SCM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2020년 10월, 당시 미 측은 회담 직후 진행되는 공동기자회견을 갑자기 취소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미 측은 “마크 에스퍼 (당시) 국방장관이 미 대통령 선거(그해 11월)를 앞두고 언론 접촉을 원하지 않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에스퍼 장관은 낮 12시 반까지 예정된 확대회담이 길어지자 5분 만에 황급히 자리를 뜨기도 했다. 오후 일정이 있다는 게 이유였지만 통상 회담 당일 양 장관들은 추가 일정을 잡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시국임에도 공중급유기까지 타고 미국을 방문한 우리 측 대표단을 적잖이 당황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공동성명에선 방위비 분담금,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여러 동맹 사안을 두고 한미 간 이견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회담장의 처참했던 분위기는 올해 5월 발간된 에스퍼 장관 회고록에도 잘 나와 있다. 그는 회담장에 앉자마자 다른 동맹 현안을 제쳐두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의 열악한 근무여건에 대한 불만을 강도 높게 쏟아냈다고 했다. 에스퍼 장관은 서욱 당시 장관 앞에서 화상회의(VTC)로 참석한 마크 밀리 합참의장에게 사드 철수 및 재배치 검토까지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정부 소식통은 “2년 전 한미 동맹은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와서 굳이 옛 기억을 끄집어낸 이유는 3일(현지 시간) 펜타곤에서 2년 만에 다시 열린 제54차 SCM에선 한미 간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미 국방장관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앞에서 한목소리를 냈다. 공동성명엔 전술핵 등 북한의 핵 공격 시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는 문구까지 담겼다. 이종섭 장관은 “SCM이 이전에는 한미 간 이견으로 합의가 어려운 경우도 있었는데 이번엔 수월했다”고 자평했다.

무엇보다 이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장관은 회담 당일에만 7시간 이상 함께 보냈다. SCM이 끝난 뒤 양국 장관은 미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B-52, B-1B 전략폭격기도 시찰했다. 오스틴 장관이 동맹국 장관에게 전략자산을 직접 안내한 건 매우 이례적인 경우였다.

2년 전 한 시간도 안 돼 종료됐던 회담 전날 환영 만찬 역시 이번엔 두 시간이 넘도록 진행돼 확 달라진 풍경을 연출했다. 오스틴 장관은 이 장관에게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 자필이 담긴 정전협정 초안 사본을 액자에 넣어 선물했다. 만찬 당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자 이 장관 제안으로 그 자리에서 두 장관은 한미 군용기 240여 대가 참가한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 연합훈련을 전격 연장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미 전략자산을 상시배치에 준하는 수준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전개 빈도는 물론 강도까지 늘리기로 SCM에서 결정한 다음 날, 이를 입증하듯 B-1B 전략폭격기를 한반도로 전개했다. 당초 미 측은 북한의 고강도 도발이 이어지자 SCM 전에 이미 전략폭격기 전개를 우리 군에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군 요청으로 전개 시점은 이달 중순경으로 조정됐는데, 이 장관 방미 중 북한 도발이 그칠 줄 모르자 괌 앤더슨 기지에 배치된 B-1B를 전개하기로 전격 결정한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적시에 조율된 방식으로 전략자산을 전개한다는 양국 합의가 이번 B-1B 전개로 입증된 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2년 만에 확 달라진 SCM 분위기가 미 행정부 교체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당시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과도한 동맹 청구서를 들이밀어 분위기가 얼어붙었단 얘기다. 하지만 필자는 이에 앞서 우리 군이 동맹의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도 크다고 본다. 당시 우리는 사드 기지의 열악한 근무여건을 수년간 방치하고,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으로 일관하며 전작권 전환 등만 정치적으로 밀어붙였다. 이에 미 측 불만이 누적됐고, ‘SCM 참사’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군 관계자도 “양국 간 협의는 ‘기브 앤드 테이크’가 기본인데, 미 측 요구사항을 우리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번 SCM에서 사드 기지 근무여건 개선이나 대중(對中) 견제, 한미일 3각 동맹 강화 등과 관련해 미 측과 한목소리를 내며 대북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라는 성과를 얻어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SCM의 의미가 작지 않은 이유다. SCM 결과를 발판 삼아 흔들림 없이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해나가길 기대한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