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이 같은 산을 81점 그린 이유
1906년 10월 어느 날. 예순일곱 살 화가 폴 세잔은 늘 그랬듯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태풍이 몰아쳤고, 화가는 급히 짐을 챙겨 이동합니다. 그러나 화구와 캔버스, 이젤을 지고 가기에 비바람은 너무 거셌습니다. 집으로 향하던 화가는 결국 길에서 쓰러지고 맙니다.
산을 마주하다 죽고 싶었던 화가
폴 세잔이 1902∼1906년 그린 작품 ‘생트빅투아르산’. 세잔은 1870년대부터 사망한 1906년까지 생트빅투아르산을 주제로 유화 36점과 수채화 45점을 그렸다. 사진 출처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김민 국제부 기자
그런데 이렇게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다 세상을 떠나는 것은 화가가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잔은 프랑스어로 ‘대상을 마주한 채(sur le motif)’ 죽고 싶다고 말했답니다. ‘Sur le motif’라는 프랑스어는 당시 인상파 화가들이 과거의 그림이 아닌 실제 풍경과 일상을 그리기 위해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세잔의 말은 내가 그릴 대상을 직접 눈으로 마주하고 관찰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의미였죠. 그의 바람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세잔은 이런 생트빅투아르산을 30대가 된 1870년대부터 말년까지 유화로 36점, 수채화로 45점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렁이는 마음의 산을 그리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의 해발 1011m 생트빅투아르산.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그림을 보면 마치 조각천을 짜깁기한 ‘패치워크’처럼 색면이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산의 지형은 물론 산 아래 마을의 집과 나무도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색면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죠.
사진과 비교하면 그 특징은 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사진이 순간의 빛을 포착해 반사되는 작은 입자를 남겼다고 한다면, 세잔의 그림은 풍경을 좀 더 몽글몽글하게 표현합니다. 그 결과 사진은 찍힌 순간이 얼어붙은 느낌을 주는데 그림은 산과 나무와 집들이 서로 부딪치는 색깔로 일렁이는 느낌을 줍니다. 그 결과 산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묘하게도 사진이 아닌 그림이죠.
이는 풍경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이해’한 바를 그림으로 풀어놓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이해’라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눈으로 볼 때 그것은 단순히 사진기가 빛을 받아들이는 것과 달리, 내 마음과 생각이 반영됩니다. 이를테면 사과를 본다고 할 때 카메라는 빨간색과 형태만을 인식하지만, 사람은 맛과 향은 물론 그것의 상징까지 떠올린다는 것이죠.
신도 왕도 무너진 세계
세잔이 살았던 19세기 말 유럽은 격동기였습니다. 이 시기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사건을 세 가지로 꼽는다면, 첫째는 ‘고대 문명의 발견’, 둘째는 ‘종의 기원’ 출간, 셋째는 ‘1848년 혁명’입니다.고대 문명의 발견, 특히 이집트 문명처럼 유럽 밖 대륙의 화려한 문화는 유럽인의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었습니다. 또 ‘종의 기원’은 인류가 영장류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제시해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죠. 이런 가운데 1848년 유럽 곳곳에서 제국에 반기를 드는 혁명이 일어납니다. 신과 왕의 세계에서 벗어나겠다는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세잔은 파리를 벗어나 고향의 산으로 향합니다. 믿었던 것이 무너질 때 사람은 혼란에 빠집니다. 그 혼란은 좌절 분노 허탈 등의 감정을 느끼게 하죠. 이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면 덫처럼 나를 옭아맵니다. 현명한 해결책은 나를 다시 직관하고 중심을 찾는 것입니다.
세잔은 혼란 속에서 산을 마주하며 선문답을 하듯,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생을 완성하기로 합니다. ‘대상을 마주한 채’ 죽기로 결심하면서 말이죠. 결국 평생을 바친 그의 예술은 ‘개인의 눈’을 표현해 자아의 탄생을 예고하며 불멸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의 해발 1011m 생트빅투아르산.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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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국제부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