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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보내. CPR환자 하도 많아 셀 수도 없다” 다급했던 119무전

입력 | 2022-11-08 14:54:00


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적은 추모글이 붙어 있다. 2022.11.8/뉴스1 ⓒ News1

지난 10월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119 구급대 사이에 주고받은 무전 녹취록이 공개됐다. 녹취록에는 다급했던 현장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8일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소방재난본에서 제출받은 ‘용산구 이태원동 구조 관련 녹취’에는 지난달 29일 참사 당일 오후 10시18분부터 다음날 오전 10시26분까지의 소방 무전 내용이 실렸다.

당시 무전 내용을 보면 29일 오후 10시20분부터 “사람도 깔려 있다”는 “경인 비발(경찰 출동) 독촉 좀 해주세요”라는 다급한 내용의 무전이 오갔다. 3분 뒤인 오후 10시23분에는 “10명 정도가 깔려 있다는 신고가 들어오고 있다”는 무전이 관제대(서울종합방재센터)에서 현장 출동 지휘대에게 전달됐다.

무전이 시작된 지난달 29일 오후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경찰의 출동과 현장 통제를 요청하는 무전은 계속됐다.

현장에 도착한 구급 대원들이 차량밀집으로 현장 진입이 어려워 도보로 이동한다는 무전 내용도 잡혔다. 참사 당일 오후 10시29분 “현재 차량진입이 곤란한 상황. 대원들 도보로 이동 중”, “대응총괄팀장하고 2명도 그쪽으로 도보 이동 중”이라는 무전이 이어졌다.

오후 10시31분쯤 현장에 도착한 지휘팀장으로부터 현장 상황을 전달하는 첫 무전이 전달됐다. 지휘팀장은 “해밀톤호텔 바로 옆 골목에 30명정도 되는 행인이 넘어져 있는 상태고 급차(구급차)는 현재까지 보이는 상황이 없는 것 같다”는 무전을 보냈고, 용산지휘소도 “30명 정도 되는 성인 낙상 급자는 현재까지 열둘”이라고 답했다. 이에 관제대는 곧바로 ‘코드 제로’를 선언했다.

오후 10시42분부터는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벌이는 대원들이 구급차와 지원을 찾는 목소리가 계속해 녹취에 담겼다. 현장에서는 “구급차 빨리, 구급차 빨리”, “15명 정도 쓰러져 있고 CPR 실시 중이에요. 응급해요” “응급환자 스무명 넘어요 다 CPR 실시 중이에요”이라는 무전이 송출됐다.

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한 스님이 희생자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 2022.11.8/뉴스1 ⓒ News1


환자 발생이 계속해 늘어나는 가운데 차량 정체으로 구급대 도착이 늦어지고 골목에 여전히 인파가 많아 통제가 되지 않고 있다는 보고가 쏟아졌다. 오후 10시55분 용산지휘소는 관제대에 “해밀톤 입구 1번 축구 골목 진입이 불가할 정도로 통제가 안 되는데 112 신고해가지도 추가 경인(경찰) 좀 많이 비발시켜주세요”라고 요청했다.

골목 전면으로의 진입이 어려워지자 현장 구조대원들은 해밀톤 호텔 뒤쪽으로 이동해 환자를 T자형 골목 양쪽으로 분산시키는 작업에 돌입했다. 오후 10시58분 현장 지휘팀장은 “대원들은 비착(도착)하는데로 해밀톤 호텔 뒤쪽으로 달하나 할 수 있도록(갈 수 있도록), 행인부터 순차적으로 일으켜서 앞쪽에 넘어진 행인들을 구조해야 될 것 같아요”라고 지시했다.

오후 11시5분이 되자 용산소방서장이 현장에 도착해 현장 지휘를 시작한다. 용산소방서장은 구급대를 추가로 요청하고 대원이 해밀톤 호텔 뒤편으로 이동해 구조작업을 펼칠 것을 주문했다. 그는 “호텔 뒤편으로 빨리 뛰어와 주기 바란다”, “소방력은 해밀톤 호텔 뒤편으로 모두 소방력을 보내, 지금 CPR 환자가 하도 많아. 지금 몇명인지 셀 수도(없다)”고 지시했다.

오후 11시14분 관제대는 소방 대응 2단계를 발령했다. 대응단계 격상으로 소방력이 추가 투입되는 것이 결정됐지만 사상자가 다수 발생해 인력 지원이 계속 더 필요하다는 요청이 계속해 무전을 통해 나왔다.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고 구급대가 부족한 상황에서 생존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한 CPR을 멈추라는 지시도 나왔다. 오후 11시16분 한 구급대는 “의식 있거나 말 가능하거나 거동 가능한 사람을 제외한 사람들은 즉시 CPR 멈추세요. 지연으로 만들 거예요, 지연으로”라고 지시했다. ‘지연’은 다수 사상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생존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두고 가능성이 높은 환자에 구조를 집중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어 오후 11시48분에는 서울소방본부장이 현장에 도착해 대응 3단계를 발령했다. 이어진 무전들에서는 현장에서 구조된 환자들을 수습하고 이송하는 문제에 대한 무전들이 다음날 오전까지 계속해 오고 갔다. 밤 12시쯤에는 현장의 통신이 마비돼 “용산현장으로 각 통신사 중계기 요청해달라”는 무전도 있었다.

◇ 참사 현장 옆 골목에서도 “압사 여러명 있다” 신고도

한편, 무전 기록에는 이태원 참사 장소인 이태원동 119-3, 119-6번지 외에 이태원동 119-20, 119-29번지에서도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고 기록됐다. 119-20, 119-29번지는 참사 발생지에서 서쪽(녹사평역 방향)으로 두 블록 건너에 있는 골목으로 거리로는 채 100m가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당시 녹취록을 보면 참사 당일 오후 11시31분 관제대로부터 “119-20에 여러 명이 쓰러져 있다고 동보건이 들어왔다”, “119-29 0000(상점이름) 안에 압사 여러 명 돼 있다고 동보 들어왔다”는 무전이 있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