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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사우디 꿈의 직장’ 아람코… “외국인-여성 직원 북적”

입력 | 2022-11-08 17:17:00


“학점은 기본적으로 매우 높아야 해서 저도 거의 만점 받았어요. 최근에는 여성 채용도 절반이 넘을 정도로 크게 늘어났어요.”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세계 최대 석유기업 아람코의 사우디아라비아 다란 본사. “아람코에 취업하려면 얼마나 어렵냐”는 질문에 대한 사우디 국적 여성 직원의 대답이었다.

국영기업 아람코는 사우디의 석유 생산·판매를 독점하며 나라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애플에 이어 글로벌 시가총액 2위인 아람코는 사우디 시민에게 ‘꿈의 직장’으로 불린다. 여성 채용 확대는 사우디의 실질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하고 영화관을 개장하는 움직임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1933년 설립 이후 철저히 베일에 싸여있던 아람코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개방·개혁 정책과 맞닿아 거대한 변화를 시작한 것이다. 덩치만 ‘글로벌 넘버 원’이었던 아람코도 점차 글로벌 기업으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었다.

● 외국인과 여성 직원 북적한 아람코 본사…“아직도 변화 낯설어”

아람코 본사에서 만난 한 직원은 “최근 몇 년 새 아람코와 사우디의 변화는 아직도 낯설다”라고 말했다. 실제 현지에서 만난 아람코 담당자들의 절반가량은 사우디 국적이 아닌 외국인이었다. 사우디 직원들까지 모두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세계 최대 글로벌 기업답게 압도적인 수준의 연봉과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사 옆 아람코 빌리지에는 이들의 여가 생활을 위한 영화관, 운동시설, 식당 등 각종 문화시설도 있다.

한국인 직원들도 점차 늘고 있다. 25일(현지 시간) 사우디 KAUST 대학에서 만난 장준석 아람코 리서치센터 연구원도 그 중 하나였다. 현대자동차 등과 협업해 내연기관의 효율성을 높이는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아람코 관계자는 “2019년 첫 기업공개(IPO) 이후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채용을 확대하는 분위기”라며 “탄소중립을 강조하는 아람코가 한국의 자동차·조선·수소 산업 등과 협업할 기회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20세기 세계 경제의 핵심 뼈대가 석유 산업이었던 만큼 아람코는 오랜 기간 세계 최대 기업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굳이 기업 활동을 외부에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2019년 사우디 증시에 기업공개(IPO)를 하고 탄소중립을 강조하는 등 적극적으로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아람코의 변화는 급변 중인 사우디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실권자가 된 뒤 엄격한 사우디의 근본주의 율법을 깨고 개혁·개방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석유만으로는 사우디의 앞날이 불확실하다고 판단하고 탈석유화를 통한 경제 다각화에 적극 나서는 중이다. 아람코가 최근 IPO를 한 이유도 투자금을 확보해 경제 구조를 다변화하는데 투자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석된다.

● 빈 살만 개방 정책에 마을은 관광지로, 한류 열풍도 확대

사우디가 경제 구조 다각화의 핵심 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은 관광업이다. 총 사업비 5000억 달러(약 703조 원)로 추산되는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 ‘네옴시티’ 사업이 대표적이다. 사우디 제다의 올드타운에서는 이미 마을 전체가 건설 현장과 다름없었다. 한 카페 사장은 “옛 건물들을 다 리모델링하고 도로를 정비하며 관광지로 탈바꿈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사우디는 아람코의 석유 산업만으로도 충분히 돈이 된 만큼 오랜 기간 외국인 관광에 폐쇄적이었다. 까다로운 비자 심사를 거쳐 특별한 경우에만 입국이 가능했다. 사우디 전통 복장인 도브(흰색의 긴 옷)와 슈막(두건)을 두르고 거리를 구경하는 기자를 여전히 흥미롭게 바라보는 시민들이 많았다. 흔치 않은 동양인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한류는 사우디에서도 위력을 떨치고 있다. 2019년 수도 리야드의 스타디움에서는 방탄소년단(BTS)이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적이 있다. 기자에게도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로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경우가 있었다, 한국식 ‘손하트’를 요청하거나 K드라마와 K팝을 좋아한다며 말을 걸기도 했다.

사우디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여성의 권리다. 2018년부터 사우디에서는 오랜 기간 금지됐던 여성 운전이 가능해졌다. 억눌렸던 차량 구매 욕구가 폭발해서일까. 고급 스포츠카를 타는 여성 운전자들이 남성보다 도로에 더 많이 보였다. 취재 차량 운전자는 한 여성 운전자가 주차에 애를 먹는 모습을 보더니 “여성들이 운전을 배운지 얼마 안 돼 아직 주차가 서툰 경우가 많다”라고 했다.

사우디의 문화 개방은 빠른 속도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공항이나 큰 쇼핑몰에는 아람코가 장기 후원하는 포뮬러원(F1) 광고가 여기저기 보였다. F1에서 지속 가능한 탄소저감 연료와 엔진 효율성 향상 등을 돕고 있다. 사우디는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해 부산과 경쟁 중이기도 하다. 코바르에서 만난 사우디의 한 시민은 “이미 우리가 한국보다 많은 국가들을 설득해 놨기 때문에 이변이 없다면 사우디가 엑스포를 유치하는 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제다·다란=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