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파고드는 마약] ‘대마 합법화’ 5개월… 태국 르포
태국 관광지서 팔리는 대마제품 태국 파타야의 유흥가인 ‘워킹스트리트’ 인근의 한 대마초 전문 판매 상점 입구에 ‘프리미엄 유기농 대마초’라는 한글 간판이 있다. 파타야=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6일(현지 시간) 태국 수도 방콕에서 약 100km 떨어진 관광도시 파타야의 중심가를 걷던 중 한 상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프리미엄 유기농 대마초’라는 한글 열 글자가 쓰여 있었다. 낯선 간판 앞에서 당혹스러워하는 기자에게 인근 상점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대마초 한 봉지에 50밧(약 1860원)이에요. 몸이 편안해지는(chill) 대마를 찾으세요?”
점원은 조그만 대마초 봉지를 기자에게 들이밀었다. 그의 가게는 한쪽 창구에선 코코넛 주스를, 다른 창구에선 대마초를 3g씩 소분해 팔고 있었다. 그는 대마초 모양의 초록색 잎사귀가 군데군데 그려진 가게 앞에서 관광객들에게 대마초 봉지를 펼쳐 보이고 있었다. 20, 30대로 보이는 한국인 관광객 2명이 신기한 듯 가게 안을 살펴보며 대화를 나눴다. “50밧밖에 안 해?” “엄청 싸네.”
○ 물·치약·국수 등 일상에 스며든 대마
태국 관광지서 팔리는 대마제품 파타야의 한 대형마트 입구에 대마가 들어간 커피와 코코아 등 음료를 판매하는 자판기가 설치돼 있다. 파타야=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태국 관광지서 팔리는 대마제품 편의점에서도 대마 성분이 함유된 라임맛 음료가 17밧(약 630원)에 판매되고 있다. 파타야=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자녀와 함께 이달 파타야를 방문한 한국인 A 씨(51)는 “식당에서 국수를 주문하면서 ‘여기 대마 들어 있냐고 물어봤다. 음식이며 커피, 물에도 대마를 넣는다고 하니 걱정이 됐다. 아이들과 함께 (태국에) 와도 될까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파타야에 거주하는 교민 B 씨는 “파타야 나이트클럽 주변에 환각 상태의 젊은 한국인들이 많다고 들었다. 처음엔 물담배 같은 데 대마를 넣어 피우다가 결국 일반 마약까지 하게 된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요즘 태국 경찰이 음주운전은 단속해도 마약 단속은 안 한다. 예전엔 경찰이 운전자 눈빛이 이상하면 차를 세웠는데 이제 그런 것도 없어졌다”고 했다.
또 다른 교민 C 씨(46)는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현지인 동료로부터 대마초 모종을 권유받았다. “그 직원이 ‘한 개 줄까’ 하면서 대마초 모종을 건네더군요. 마당에서 대마를 키우는데 심으면 일주일이면 잎이 난다더라고요.”
○ ‘입문용 마약’ 대마에 한국인 무방비 노출
태국이 적극적으로 관광객 유치에 나서면서 한국인들이 대마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 1∼7월 한국인 관광객 11만5000여 명이 태국을 방문했다.전문가들은 대마초가 일종의 ‘입문용 마약’이라며 해외에서 마약을 처음 접한 뒤 중독성이 더 강한 필로폰 등에 의존하는 마약 중독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마약 범죄 전문가인 박진실 변호사는 “해외여행을 가서 호기심에 마약을 접한 사람들이 귀국 후 다크웹 텔레그램 등으로 쉽게 마약을 구한다. 그러다 상습범이 돼 결국 꼬리가 잡힌다”고 했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장은 “대마초도 환각성과 내성이 강해 결국 중독이 된다”며 “태국산 대마는 마약으로 가는 게이트웨이”라고 했다.
파타야=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