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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태국 상점 간판에 한글로 ‘유기농 대마초’… 한국인 관광객 유혹

입력 | 2022-11-09 03:00:00

[일상 파고드는 마약]
‘대마 합법화’ 5개월… 태국 르포



태국 관광지서 팔리는 대마제품 태국 파타야의 유흥가인 ‘워킹스트리트’ 인근의 한 대마초 전문 판매 상점 입구에 ‘프리미엄 유기농 대마초’라는 한글 간판이 있다. 파타야=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6일(현지 시간) 태국 수도 방콕에서 약 100km 떨어진 관광도시 파타야의 중심가를 걷던 중 한 상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프리미엄 유기농 대마초’라는 한글 열 글자가 쓰여 있었다. 낯선 간판 앞에서 당혹스러워하는 기자에게 인근 상점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대마초 한 봉지에 50밧(약 1860원)이에요. 몸이 편안해지는(chill) 대마를 찾으세요?”

점원은 조그만 대마초 봉지를 기자에게 들이밀었다. 그의 가게는 한쪽 창구에선 코코넛 주스를, 다른 창구에선 대마초를 3g씩 소분해 팔고 있었다. 그는 대마초 모양의 초록색 잎사귀가 군데군데 그려진 가게 앞에서 관광객들에게 대마초 봉지를 펼쳐 보이고 있었다. 20, 30대로 보이는 한국인 관광객 2명이 신기한 듯 가게 안을 살펴보며 대화를 나눴다. “50밧밖에 안 해?” “엄청 싸네.”
○ 물·치약·국수 등 일상에 스며든 대마

태국 관광지서 팔리는 대마제품  파타야의 한 대형마트 입구에 대마가 들어간 커피와 코코아 등 음료를 판매하는 자판기가 설치돼 있다. 파타야=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태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붕괴된 관광 사업 등을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6월부터 대마를 마약류에서 제외하고, 가정 재배도 허용했다. 태국 정부는 향정신성 화학물질인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HC)을 0.2% 이하로 함유한 의료용 대마의 생산 및 소비만 허용한다고 하지만 태국마약청에 따르면 태국에서 재배되는 대마의 95%는 이 수치에 미달해 사실상 제한이 없다.

태국 관광지서 팔리는 대마제품 편의점에서도 대마 성분이 함유된 라임맛 음료가 17밧(약 630원)에 판매되고 있다. 파타야=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대마가 합법화된 지 5개월쯤 지난 요즘 파타야에는 대마초가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편의점과 약국, 대형마트 등에서 대마가 함유된 물과 버블티 등 음료수, 대마 치약, 면에 대마 잎을 얹어 먹는 대마 국수 등 다양한 제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한 대형마트 입구에는 대마가 들어간 커피를 파는 자판기도 있었다. 한 잔에 20밧(약 740원)씩 모카, 라테, 에스프레소 등이 종류별로 갖춰져 있었다. ‘18세 이상만 구입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있었지만 신분증을 확인하는 직원은 없었다.

자녀와 함께 이달 파타야를 방문한 한국인 A 씨(51)는 “식당에서 국수를 주문하면서 ‘여기 대마 들어 있냐고 물어봤다. 음식이며 커피, 물에도 대마를 넣는다고 하니 걱정이 됐다. 아이들과 함께 (태국에) 와도 될까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파타야에 거주하는 교민 B 씨는 “파타야 나이트클럽 주변에 환각 상태의 젊은 한국인들이 많다고 들었다. 처음엔 물담배 같은 데 대마를 넣어 피우다가 결국 일반 마약까지 하게 된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요즘 태국 경찰이 음주운전은 단속해도 마약 단속은 안 한다. 예전엔 경찰이 운전자 눈빛이 이상하면 차를 세웠는데 이제 그런 것도 없어졌다”고 했다.

또 다른 교민 C 씨(46)는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현지인 동료로부터 대마초 모종을 권유받았다. “그 직원이 ‘한 개 줄까’ 하면서 대마초 모종을 건네더군요. 마당에서 대마를 키우는데 심으면 일주일이면 잎이 난다더라고요.”
○ ‘입문용 마약’ 대마에 한국인 무방비 노출
태국이 적극적으로 관광객 유치에 나서면서 한국인들이 대마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 1∼7월 한국인 관광객 11만5000여 명이 태국을 방문했다.

전문가들은 대마초가 일종의 ‘입문용 마약’이라며 해외에서 마약을 처음 접한 뒤 중독성이 더 강한 필로폰 등에 의존하는 마약 중독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마약 범죄 전문가인 박진실 변호사는 “해외여행을 가서 호기심에 마약을 접한 사람들이 귀국 후 다크웹 텔레그램 등으로 쉽게 마약을 구한다. 그러다 상습범이 돼 결국 꼬리가 잡힌다”고 했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장은 “대마초도 환각성과 내성이 강해 결국 중독이 된다”며 “태국산 대마는 마약으로 가는 게이트웨이”라고 했다.

외국에서 호기심에라도 대마를 흡연하거나 섭취한 경우 귀국 후 처벌 대상이 된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단순 투약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대마를 수입하거나 수입할 목적으로 소지·소유한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박 변호사는 “한국인이 태국 등 대마가 합법인 국가로 출국하는 경우 현지에서 주의할 사항과 대마 이용 또는 소지 시 처벌받는다는 점 등에 대한 사전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타야=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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