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회사채 시장의 경색이 장기화되면서 ‘돈맥경화’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단기자금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단기자금 시장의 대표적인 지표인 기업어음(CP) 금리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연 5%에 도달했다. 최근에는 대기업들마저 회사채 시장을 통한 자금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단기자금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최상위 신용등급인 ‘A1’급 기준 CP 91일물 금리는 연 5.0%를 기록했다. 2009년 1월 15일(5.0%) 이후 13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CP 금리는 올해 초만 해도 1.5% 안팎이었지만 급등세를 거듭하면서 세 배 이상으로 뛰었다.
CP는 일반 회사채보다 만기가 짧아 빨리 상환해야 하는 데다 금리도 높은 편이라 평상시에는 기업들이 자금 조달 수단으로 선호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회사채 시장이 크게 위축되며 자금 확보에 비상이 걸리자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발행 절차가 간소한 단기자금 시장을 노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와 은행권은 기업들의 자금난 완화를 위해 채권 매입 등 유동성 공급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20개 주요 은행장들은 김주현 금융위원장 주재로 간담회를 열고 단기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CP와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정부의 시장 안정 대책과 은행 노력이 결합하면 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자금 지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채권시장의 불안과 기업들의 자금난이 장기화되면서 이런 시장안정 대책의 효과도 제한적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센터장은 “정부에서 발표한 유동성 공급 대책은 당장의 마중물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도 충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라며 “금리가 추가로 인상될 것으로 보이고, 실물경기와 부동산 시장도 가라앉을 가능성이 있어 추가 대응이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호기자 number2@donga.com
박상준기자 speak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