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7일(현지시간) 미 로드아일랜드주 워릭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이 투표소 안내판을 지나고 있다. AP/뉴시스
미국 중간선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은 4년 만에 공화당에 하원 다수당 지위를 내줄 것이 유력하지만 상원에서는 양당이 막판까지 팽팽한 초접전 승부를 펼쳤다.
미국 현직 대통령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중간선거는 지지율이 높던 대통령도 번번이 패배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0년에 하원 63석, 상원 6석을 잃었고,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상원 2석을 얻었지만 하원에서 40석을 잃었다. 반면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하원 4~5석을 잃는 수준으로 공화당에 다수당을 넘겨줄 것으로 보인다고 미 언론들이 예측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이 내세운 경제심판론이 표심에 영향을 주긴 했지만 상원까지 압도할 정도로 ‘레드웨이브(공화당 바람)’를 일으키지는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4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유권자들이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에 실망감을 드러내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 민주주의 위협에 대한 위기감, 낙태권 폐지에 대한 우려로 공화당에도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CNN은 “2020년 대선에서 결집했던 반(反)트럼프 유권자들이 결집하며 레드 웨이브를 막아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경제심판 못지않았던 낙태권 옹호 여론
CNN, NBC 방송 등 외신들은 이날 개표를 앞두고 “민주당이 인플레이션 대처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8일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3분의 1에 가까운(32%) 유권자들은 투표에 영향을 미친 가장 큰 요인으로 ‘인플레이션’을 꼽았다. ‘낙태권(27%)’이 뒤를 이었다.
공화당은 하원 다수당 탈환이 유력하지만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대표가 ‘레드 웨이브’의 출발점으로 꼽았던 버지니아 7구역 하원 의석을 애비가일 스펜버거 민주당 의원이 가져가는 등 공화당의 압승은 아니었다.
선거 막판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으로 민주당 지지층이 결집한 데다, 6월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지 결정 이후 낙태권 무력화에 적극적인 공화당에 대한 반대 여론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격전지인 펜실베니아주 상원의원에 페터맨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것도 낙태권 옹호 여론이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NBC 방송은 “펜실베니아주 출구조사에서는 낙태권이 인플레이션 등 경제 문제보다 우선시되는 사안이었다”고 보도했다. 제이슨 리플러 엑스터대 교수는 동아일보에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공화당은 훨씬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낙태권 등의 영향으로 민주당이 예상 외로 선전했다”고 말했다.
● 중간선거로 정치양극화 혼란 가중
낙태, 총기규제, 성소수자, 기후변화, 이민 정책에서 극과 극을 달리는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에서는 일찌감치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주지사-상원의원을 챙겼다. 초등학교에서의 동성애 교육 금지 등 이른바 ‘문화 전쟁’의 중심지인 플로리다주는 표심이 유동적인 ‘스윙 스테이트(경합주)’였지만 공화당의 압승으로 오히려 ‘레드 스테이트’가 됐다.
상원 경합지 초박빙인 조지아주는 과반을 넘어야 하는 주 법에 따라 12월 결선 투표에서 승부가 날 가능성이 높다. 현지에선 미 합중국이 아닌 ‘분열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당 지지자 모두 미국의 현 상황에 대해 불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NBC 방송의 출구 조사에 따르면 유권자 39%는 ‘불만족스럽다’고 답했고, 34%는 ‘화가 나 있다’고 응답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