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사태 등에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돈줄을 죄면서 채권시장 경색이 심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전력의 채권 발행 한도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가뜩이나 부족한 자금이 최우량 공기업 채권에 모두 빨려들 것이란 시장의 우려가 크다.
추경호 부총리가 지난달 “한전채 발행 한도를 높여야 자금을 융통하면서 경영이 가능하다”며 운을 뗐다. 적자 보전을 위해 한전이 올해만 23조 원어치 채권을 발행한 탓에 ‘자본금과 적립금을 더한 금액의 2배’로 법이 정한 한도가 연말이면 꽉 차기 때문이다. 이에 맞춰 최근 국민의힘 의원 두 명이 한도를 각각 5배, 10배로 고치는 법안을 발의했다.
액화천연가스(LNG) 등 수입 연료 가격이 폭등해 올해 한전의 적자가 30조 원을 넘고, 전력을 살 돈도 부족한 실정이어서 한도 확대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전기요금을 올려 해결하는 게 정석이지만 물가가 급등하고,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가중되기 때문에 정부가 쉽게 쓸 수 없는 카드다. 올해 전기요금은 이미 20% 올랐는데 오일쇼크 때였던 1974년, 1980년, 1979년 다음으로 높은 인상률이다.
당정은 한전의 채권 발행 한도 확대가 다른 기업들을 흑자부도로 내모는 일이 없도록 확실한 대책부터 세워야 한다. 정부가 한전에 채권 발행 대신 은행 대출을 이용하도록 권유하고 있지만 이 역시 다른 기업의 대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높은 신용을 활용한 해외 채권 발행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전기요금 단계 인상, 한전 지출 구조조정도 병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