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뇌부 작당한 듯 참사에 부실대응 오만한 행안부 장관-비서실장도 문제 어떻게 책임질 줄 아는 이가 한 명도 없나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3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가슴이 꽉 막히다 못해 터질 것 같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관련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정말이지 뜨거운 울화가 치민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지 우리 동네 신경정신과 의원에는 희생자와 아무 관련 없는 보통 시민들이 병원 문 열기 전부터 와서 기다린다고 한다.
무엇보다 납득되지 않는 건 전 용산경찰서장의 해괴한 행태다. 참사 당일 오후 9시 반쯤 저녁식사 중 용산서에서 상황 보고를 받은 그는 밥 다 먹고, 걸어서 10분 거리를 굳이 관용차를 타고 11시 5분에야 이태원파출소 옥상에 올라가 현장을 지켜봤다. 마스크 없는 첫 축제인 핼러윈데이, 인파가 몰릴 게 뻔한데도 경찰청장부터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관리관까지 조직적 작당을 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일제히 자리를 비웠다. 지난 7월 경찰국 신설에 반발해 전국 총경들이 벌였던 사상 초유의 집단행동이 연상될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도 기가 막혔는지 7일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고 경찰을 질타했다. 이번 참사의 책임을 경찰 책임으로 규정하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앞세워 경찰 ‘개혁’을 제대로 해낼 태세다.
이런 소방청과 경찰청을 다 거느린 관청이 행정‘안전’부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1조5000억 원을 투입해 작년에 구축을 완료한 재난안전통신망도 행안부가 관장한다. 그 행안부 수장 이상민은 참사 다음 날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무책임하고 무식하게 말해 국민 염장을 질렀다.
나중에 ‘깊은 유감’을 표했지만 이상민은 이미 주무장관으로서의 신뢰를 잃었다. 대통령과 고교·대학 동문이어서 절대 안 잘린다고 믿기 때문인지 8일 국회에서 그는 “경찰에 대한 지휘 권한이 없다”고 했다. 6월 경찰국 신설 기자회견에선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청 업무가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지휘 감독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고 해놓고는 한 입으로 두말한 거다. 그러고도 사고 수습, 재발 방지책 마련을 하겠다니 윤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이 의심스럽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실에 있음을 8일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의 국회 답변 태도를 보고 느꼈다. 그는 이번 참사에 대해 “사의(辭意)를 표한 사람도 없고, 건의한 적도 없다”고 했다.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 바꿔라, 청장 바꿔라, 이것도 후진적으로 본다”는 오만방자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국가는 분명히 없었던 것”이라고 총리가 인정을 하는 상황에도 스스로 책임지는 주무장관, 대통령 참모 한 사람 없는 나라는 선진국이냐고 묻고 싶다.
세월호 참사가 가져온 긴 트라우마와 끈질긴 정치화로 인해 윤석열 정부가 ‘밀리면 죽는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을 모르지 않는다. 진솔한 사과와 문책에 인색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 출범 전부터 ‘윤석열 퇴진’과 ‘체제전환’을 꾀해 온 좌파세력의 준동에 두 번 속을 국민은 많지 않다. ‘2014년 지방선거에 세월호 사건이 미친 영향’을 분석한 서강대 이현우 교수의 논문을 보면, 세월호의 영향을 받았다는 유권자의 60%는 지지하던 정당을 더 강하게 지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극은 2016년 총선 때 ‘진박’ 공천과 국정농단 때문이지 세월호 사과 때문이 아니었다.
2021년 6월 21일 윤 대통령은 정치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그리고 세금을 내는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제 눈에 실력주의’인 데다 안팎으로 내 식구만 챙기는 독불장군 리더십에 분노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마침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떠난다. 돌아올 때는 새로 취임하는 것처럼 다시 시작해 주었으면 좋겠다. ‘윤석열 정부 2기’는 이상민 장관 경질, 대통령실 쇄신으로 출발해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