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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도 편히 못 간다” 일상 마비 ‘제로코로나’에 中 민심 부글부글[글로벌 현장을 가다]

입력 | 2022-11-10 03:00:00

지난달 24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주상복합단지에 펜스가 설치됐다. ‘방역통제, 지나가지 마시오’란 표지가 붙어 있다. 2020년부터 제로코로나 정책을 3년째 시행 중인 중국에서는 장기간의 봉쇄로 인한 주민 불편과 불만, 각종 부작용과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중국 베이징에서 빵과 커피를 파는 가게를 운영하는 한국인 김모 씨(49)는 지난달 25일 당국으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전화를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전날 매장을 방문했으니 즉시 가게 문을 닫고 전 직원을 집에 머물도록 하라는 지시였다. 그는 “가게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젠캉바오(健康寶)’라는 통행 QR코드 프로그램을 스캔하도록 했다”며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는 애초에 가게에 들어올 수 없기에 매우 의아했다”고 했다.》



그가 매장 폐쇄회로(CC)TV를 돌려보고 보건당국의 설명까지 들은 결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302번’으로 명명된 이 확진자는 전날 오후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커피를 주문했다. 배달이 아닌 ‘매장 방문 직접 수령’을 택했다. 이 확진자는 잠시 후 매장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직원에게 “커피를 가져다 달라”고 요청해 받아갔다. 그날 저녁 코로나19 감염 여부 검사를 받았고 다음 날 새벽 양성 판정을 받았다.

김 씨는 CCTV 등을 토대로 이 확진자가 매장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당국은 막무가내였다. 그를 포함한 직원 10명은 지난달 25일부터 당국이 지정한 시설에서 격리를 시작했다. 이달 4일에야 격리가 풀렸다. 가게 문을 다시 열었지만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소문으로 매출이 평소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김 씨는 “확진자에게 15위안(약 2900원)짜리 커피 하나를 팔고 12만 위안(약 2400만 원)의 매출 손실을 봤다”며 “‘제로(0)코로나 정책’이 철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당해 보니 더 심각하고 무섭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2020년 1월 이후 3년 내내 ‘제로코로나 정책’을 펴고 있는 중국이 공산당이 통치하는 사회가 아니었으면 이미 여러 번 폭동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했다.
‘탄촹(彈窓)’ 공포에 일상 마비

김 씨의 사례처럼 중국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는 해당 지역을 봉쇄하는 제로코로나 정책의 부작용 및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당국의 강력한 언론 통제에도 “융통성 없는 봉쇄와 격리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크다”는 시민들의 반발이 상당하다.

7일 홍콩 밍보는 확진자 발생으로 지난달 26일부터 봉쇄 중인 네이멍구자치구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서 55세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전했다. 이 여성은 불안 장애를 앓고 있었다. 사망자의 딸이 모친의 생전 이상 징후를 감지해 당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사실상 묵살당한 사실도 드러났다.

앞서 1일 간쑤성 란저우(蘭州)의 봉쇄 구역에서도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세 살짜리 아이가 병원 이송이 늦어져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소셜미디어 등에서는 “코로나19가 확산된 3년이 이 아이가 살았던 모든 인생”이라며 당국의 융통성 없는 조치를 비판하는 글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휴대전화의 팝업창을 뜻하는 중국어 ‘탄촹(彈窓)’ 또한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일상이 완전히 마비되는 상황을 일컫는 대명사로 바뀌었다. 중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건물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젠캉바오’를 이용해 통행 QR코드를 스캔해야 한다. 이때 확진자가 발생한 지역에 다녀왔거나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는 사람, 확진자와 반경 800m² 내에서 10분 이상 동시에 머물렀던 사람의 휴대전화에는 ‘탄촹’이란 문구가 뜬다. ‘탄촹’이 뜨면 더 이상 ‘젠캉바오’를 사용할 수 없고 모든 일상 또한 그 즉시 멈춘다.

베이징의 한 한국인 주재원은 최근 인근 톈진으로 출장을 갔다. 현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탄촹’을 접했다. 이후 한 달간 베이징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광둥성 선전에 갔던 또 다른 주재원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해 40여 일을 선전에 머물렀다. 결국 그는 베이징 복귀를 포기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일단 한국에 들어갔다 베이징으로 오면 해외 입국자 7일 격리만 해도 베이징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를 두고 “당국이 ‘탄촹’을 이용해 베이징을 요새화했다”고 진단했다. 누구도 베이징을 쉽게 벗어날 수도, 쉽게 들어올 수도 없게 했다는 뜻이다.

‘탄촹’을 해제하려면 직접 거주 단지의 관리사무소 담당자를 찾아 지난 7일간 머물렀던 모든 곳의 주소 등을 기재해야 한다. 그 후 탄촹 해제 개인 승락서, 3일간 두 차례 유전자증폭(PCR) 검사 음성 증명, 백신 접종 증명 등을 제출하고 모든 조사를 마쳐야 가능하다.
젊은층 불만 고조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제로코로나에 대한 피로와 거부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공산당의 집중적인 애국주의 교육을 받으면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핵심 지지층으로 자리 잡았지만 3년째 이어진 봉쇄에 지쳤다는 반응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다.

최근 광둥성 광저우에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당국은 관내 학교의 기숙사에 “매일 오후 11시에 반드시 불을 끄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소셜미디어에 “연구 결과 코로나19는 어둠을 무서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통제를 조롱했다. 오후 11시에 강제로 불을 끄는 것이 코로나19 확산 억제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의미다.

올 4월부터 두 달 이상 전면 봉쇄를 경험했던 상하이에서는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한 반발이 단순한 반감을 넘어 분노로까지 표출되고 있다. 지난달 폐막한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시 주석에 이어 권력서열 2위인 총리로 내정된 리창(李强) 상하이시 서기는 봉쇄 당시 주민들의 격한 항의를 받았다. 고위 지도부가 현장 시찰을 나갔다가 주민들의 항의를 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

지난달 13일 베이징에서는 하이뎬구의 고가도로 쓰퉁차오(四通橋)에 시 주석의 장기집권 및 방역 정책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 현수막의 첫 번째 문구가 바로 “핵산 검사 말고 밥이 필요하다”였다. 하이뎬구에 베이징대, 칭화대, 런민대 등 중국 최고 명문대가 몰려 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로코로나’에 따른 경제 둔화가 심각한 가운데 높은 실업률로 특히 젊은층이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5일 베이징에서 만난 몇몇 대학생은 시 주석의 장기집권보다 ‘제로코로나’에 대한 불만을 더 강하게 토로했다. 자오 씨(21)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경제는 내 생활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며 “방역이 중요하지만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고 했다.

베이징대에 다니는 한국인 유학생 김모 씨는 “베이징대에서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당시의 DNA가 아직도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다”며 “공산당과 당국에 대한 불만이 조금씩 커지고 있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유학생 이모 씨는 “대학가 화장실에서 반(反)시진핑 낙서를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여기서는 엄청난 물밑 변화”라고 강조했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