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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지만 용기를 낸[이은화의 미술시간]〈240〉

입력 | 2022-11-10 03:00:00

야코포 폰토르모 ‘미늘창을 든 군인의 초상’, 1529∼1530.


잘 차려입은 젊은 군인이 기다란 미늘창을 들고 성벽 앞에 서 있다. 앳된 얼굴과 늘씬한 몸매를 가진 그는 거만해 보일 정도로 당당하게 포즈를 취했다. 이 그림은 1989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나와 3250만 달러에 팔리며 당시 고전 미술 최고가를 경신했다. 도대체 누구의 초상화기에 그렇게 높은 가격에 팔린 걸까?

16세기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야코포 폰토르모는 메디치 가문의 궁정화가로 일하며 종교화나 귀족들의 초상화를 많이 남겼다. 이 그림은 피렌체의 젊은 군인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상아색 상의에 붉은 모자를 착용했고, 붉은 갑옷은 허리 아래에 둘렀다. 허리춤에는 장검을 차고 오른손에는 창과 도끼가 함께 있는 미늘창을 들었다.

모델의 정체에 대한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989년 폴 게티 뮤지엄이 이 그림을 거액에 사들였을 때만 해도 피렌체의 군주 코시모 1세의 초상화로 알려졌었다. 1537년 코시모 1세가 몬테무를로 전투에서 승리한 직후에 그려진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 주장이 맞는다면 군주 나이 18세 때의 모습이다. 르네상스 예술의 후원자 메디치 가문, 최고 권력자의 초상, 대가의 걸작이라는 세 가지 요소만으로도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기에 충분했을 테다.

그러나 최근 들어 르네상스 시대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의 의견에 동의하는 이들이 많다. 바사리에 따르면, 이 남자는 피렌체의 젊은 귀족 군인 프란체스코 과르디다. 1529년 전쟁으로 피렌체가 완전히 포위됐을 때, 그는 겨우 15세였다. 그 어린 나이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폰토르모는 귀족 청년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를 동시에 보여주려 한 듯하다. 품위 있고 당당한 포즈에선 나라를 지키는 군인의 자부심과 의무감을, 생기를 잃은 무표정한 얼굴에선 죽음에 대한 소년의 공포와 두려움을 읽을 수 있다. 두렵지만 용기를 낸 청년의 초상화에 애처로움과 숭고한 아름다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유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