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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가수 안 됐으면 벌써 죽었겠죠” 지코와 랩 앨범 계획하는 ‘영원한 소년’ 최백호

입력 | 2022-11-10 13:56:00


10일 발매되는 기획앨범 ‘찰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최백호.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일흔 두 살의 겨울에 접어든 노가수의 화실은 통유리로 햇살이 내리 쬐어 따뜻했다. 

부스스한 흰 머리에 검정색 티셔츠, 회색진 차림의 최백호(72)는 6개월 전 서울 영등포구 한 건물 20층에 위치한 이 작업실을 구했다.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 SBS 라디오 ‘최백호의 낭만시대’ 녹음을 가기 전까지 여기서 그림을 그리거나 곡을 쓴다. 

벽에 잔뜩 기대어있는 그림들과 바닥에 어지러이 놓인 물감들은 유년시절 시골학교 미술교사를 꿈꿨던 최백호의 일상 속 단면들이었다. 줄곧 나무를 그려왔던 그는 최근 ‘미니멀리즘’ 사조에 관심이 생겨 유튜브로 공부를 하고 있다. 


“요즘 데상(소묘)에 한계를 느껴 홍대입구 근처의 미술학원을 알아보고 있어요. 1년만 데상을 바짝 공부하면 대단한 화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웃음)” 


72세에 ‘화가’가 되겠다는 그의 포부가 농담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부터 ‘낭만에 대하여’, ‘영일만 친구’ ‘바다 끝’ 등 숱한 명곡을 내놓은 싱어송라이터이자 14년 째 라디오를 진행하는 DJ인 그는 안주하는 법이 없었다. 

여섯 번의 개인전을 연 화가이자 멜로와 SF 장르의 단편 영화 시나리오를 쓴 영화감독 꿈나무, 그리고 다음달 책을 출간하는 작가로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올해 초부터 비결핵성 항상균 폐질환으로 심하게 아팠다”는 그의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지런한 한 해를 보냈다.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건물 20층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최백호. 그는 6개월 전부터 이 곳에서 그림과 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와중에 앨범도 만들었다. 

10일 오후 6시 발매되는 기획앨범 ‘찰나’는 그가 지난해 12월 발매한 EP ‘세상보기’에 이어 11개월 만에 선보이는 앨범. 최백호가 2018년부터 멘토로 참여하고 있는 CJ ENM의 신인 작곡가 육성 및 발굴 프로젝트 ‘오펜 뮤직’ 출신 작곡가와 작사가, 콘텐츠 크리에이터 그룹 PNP 소속 작곡가들과 의기투합했다. 


통상 경험한 것을 소재로 직접 가사를 쓰지만 마지막 트랙 ‘책’을 제외한 여섯 곡의 작사, 작곡은 모두 후배들에게 맡겼다. 20대 청춘부터 70대 노년까지 세대별 소중하고 아팠던 찰나를 담은, 한 권의 책과 같은 앨범이다. 동년배 가수 정미조를 비롯해 후배 가수 타이거JK와 지코, 죠지, 콜드, 정승환이 피처링에 참여했다. 


“타이거 JK와 협업하며 처음 힙합 음악을 들었어요. 이번 앨범에 EDM 팝 ‘개화’라는 곡도 있고, 수록된 발라드들도 제 시대의 것과는 달라요.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과정이었죠. 결국 음악이라는 게 맞닿는 지점이 있더군요. 힙합에 흥미가 생겨서 지코,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와 함께 내년에 힙합 앨범도 발매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찰나라는 앨범이 제겐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붓을 들어 보인 가수 최백호. 어린 시절 미술선생님을 꿈꿨던 그는 2009년부터 다시 붓을 잡기 시작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마흔 여섯에 히트한 ‘낭만에 대하여’, 지금의 나를 생존하게 한 곡”
그의 유년시절 꿈은 시골학교 미술교사였다. 

가수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허스키한 목소리 탓에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노래를 하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스무 살 때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뒤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는 친구의 제안으로 부산 라이브 클럽 무대에 올랐다. 그 우연이 그를 가수의 길로 인도했다. 


“인생에서 제일 잘 한 일을 하나 꼽자면 친구가 무대에 한 번 서 보라고 권했을 때 그냥 받아들이고 올랐던 거에요. 그날 그 순간은 정말 잘 한 결정 같아요. 그 때 그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면 전 지금쯤 죽었을 거에요. 그때 매일 폭탄주 먹고 다녔거든.”  


소년처럼 반짝이는 눈빛은 젊은 시절 미처 소진되지 못한 열정일 것이다. 1976년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신인상을 받으며 유명세를 탔지만 20년간 이렇다할 히트곡 없이 ‘애매한 시간’을 보냈다. 

돈을 벌기 위해 부산 라이브 클럽을 하루 6, 7군데씩 돌았다. 업소 생활에 지쳐 1988년 아내와 딸을 데리고 미국 이민을 떠났다. “30대가 쭉 힘들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노래고 뭐고 다 포기하려 했다. 적당하게 술집에서 노래하며 살려 했다”고 회고했다.


가수 아이유(왼쪽)의 노래 ‘아이야 나랑 걷자’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최백호. 아이유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여러 차례 콘서트 무대에서 불렀다. 낭만에 대하여는 아이유 아버지의 ‘노래방 18번’으로도 유명하다. 로엔엔터테인먼트 제공

1995년 발매된 ‘낭만에 대하여’가 이듬해 김수현 작가의 KBS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 나오면서 대성공을 거뒀을 때는 그의 나이 마흔 여섯이었다.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라는 첫줄에서부터 곡을 써내려간 그날은 아직도 최백호의 가슴 속에 어제처럼 생생하다. 생후 5개월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스무 살 되던 해엔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30대엔 생계 걱정으로 하루도 발 뻣고 잠들지 못했다. 청춘의 고통은 ‘낭만에 대하여’에 응집됐다. 


“그 노래가 날 생존할 수 있게 했어요. 객관적인 시각에서 봐도 대단한 곡이죠. 20년이 넘어도 반응이 똑같아요. 지금도 새로운 버전의 ‘낭만에 대하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요. 얼마 전 김수현 작가님과 식사를 하면서 ‘당신이 제 생명의 은인’이라 말씀드렸어요.” 


최백호의 정면과 측면.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70대에게도 사랑은 있어요” 과거에 묶이길 거부하는 ‘영원한 소년’
때가 늦었다는 말은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후배 가수들도 그런 최백호를 보며 ‘왕년의 스타’로 남지 않는, 죽을 때까지 노래하는 가수를 꿈꾼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뷔는 최백호가 2017년 발매한 ‘바다 끝’을 팬들에게 추천하며 “힘이 들 때 위로를 받는 곡”이라고 언급했고, 가수 김호중은 그를 롤모델로 꼽았다. 


“저만치(저만큼) 늙어서도 노래하고 싶다는 뜻 아닐까요. 드라마에도 노인정이 필요하듯 노래에도 노인 목소리가 필요하니까요. (웃음)” 


꿈꾸는 소년과 온화한 노년의 얼굴은 음악에 대한 철칙을 이야기할 때만큼은 한 치의 타협 없는 엄격한 거장의 얼굴로 바뀌었다. 


“제 딸과 손자, 손녀에게 부끄러운 노래는 안 하겠다는 게 가수로서의 기준이에요. 특히 표절은 안돼. 그건 도둑질이에요. 표절을 용서한다면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을 다 풀어줘야 해요. 그래서 전 노래도 너무 많이 듣진 않아요. 은연중에 그 멜로디가 작곡 중에 나올 수도 있어서요.” 


창밖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최백호.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여러 인터뷰에서 “나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언급한 최백호. 

그는 과거에 묶여있기를 거부하며, 지금 현재의 열정에 집중한다. “70대에게도 사랑은 있어요”라며 웃던 그는, 사랑할 대상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영원한 소년이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잠재력은 무궁하다고 생각해요. 노력하고 집착하면 어떤 일이든, 어떤 세계든 이룰 수 있어요. 제가 70대에도 좋은 노래를 불렀으니 80대, 90대에도 틀림없이 부를 수 있겠죠.”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