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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그림자의 의미[이준식의 한시 한 수]〈186〉

입력 | 2022-11-11 03:00:00


화려한 누각에 첩첩이 어리는 꽃 그림자, 몇 번이나 아이 불러 쓸어도 없앨 수 없네.

태양으로 잠깐 거두어지긴 해도, 밝은 달이 외려 다시 불러오리니.

(重重疊疊上瑤臺, 幾度呼童掃不開. 剛被太陽收拾去, 각敎明月送將來.)

―‘꽃 그림자(화영·花影)’ 소식(蘇軾·1037∼1101)

시인은 왜 꽃 그림자를 비질하여 쓸어내려 했을까. 화려한 누각을 뒤덮은 게 향긋한 꽃이 아니라 서늘한 그림자여서인가. 아무리 쓸고 또 쓸어봐야 소용없다는 걸 모를 리 없으련만 왜 애먼 아이만 고달프게 했을까. 지는 해와 함께 그림자가 잠시 사라질 순 있지만 밝은 달이 뜨면 이번엔 달그림자로 다시 등장할 테다. 꽃 그림자를 싹 쓸어버리겠다는 시인의 발상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건지 궁금했던 후인들은 이 시를 두고 갖은 억측을 쏟아냈다.

혹자는 시인이 심심풀이로 문자 유희를 즐기면서 꽃 그림자의 움직임을 좇아 한가로이 시간을 보낸 소회를 토로한 것이라 했다. 혹자는 또 정치적 갈등에 시달리던 시인이 반대파 인물을 어두운 그림자에 빗댄 것이라 했다. 마침 왕안석 등의 신법파에 밀려나 오랫동안 남쪽 지방에 좌천되는 쓴맛을 본 시인의 처지에도 부합하는 추리다. 궁정이라는 화려한 누각을 밤낮으로 서성대며 시야를 흐리는 무리들을 넌지시 비꼬았다는 해석이다. 그런가 하면 이 시에 심오한 삶의 이치가 담겼다고 보는 이도 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필연코 그림자를 수반하기 마련. 둘은 원인과 결과로 서로 맞물려 돌아갈 뿐 호불호, 선악, 시비 따위의 잣대로 평가할 성질이 아니다. 하니 떼려야 뗄 수 없고 영원히 쓸어버릴 수도 없는 그림자에다 굳이 그런 잣대를 들이대려는 어리석음을 범할 필요는 없다. 변화무쌍한 세상사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현실을 오롯이 받아들이자는 권유라 여겨도 되겠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