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띠띠띠….’
동서울시외버스터미널. 경기 양평으로 떠나는 버스가 후진하며 내는 소리가 그리 사람을 편안하게 할지 몰랐다. 서울에서 멀어진다는 것, 조금씩 벗어난다는 것이 왜 이리 위안으로 다가오는지. 지난 한 달, 강원 철원과 양평으로 버스를 타고 떠날 일이 있었다. 첫 여정에서는 막연히 좋다, 하는 마음이었는데 두 번째 여정에서는 버스로 하는 이동만이 줄 수 있는 만족과 기쁨이 실감나게 와 닿으면서 그 내용을 나에게 보내느라 수없이 여러 번 카카오톡 창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안정적인 속도로 미끄러지는 버스 안에 있다 보면 시공간의 무늬가 계속해서,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크고 복잡한 도시를 빠져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여 분. 버스가 달릴수록 풍경은 한적해져 건물의 밀도가 슬슬 낮아지고 그 사이로 나무와 들판, 임야와 공터가 펼쳐진다. 그 여백만큼 머리도 숨을 쉬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젖는다. 어제 화를 낸 것에 대한 후회부터 10년 후 나의 인생, 사람의 도리와 행복의 조건에 이르기까지. 버스만 주기적으로 타도 괜찮은 어른이 될 것 같다. 버스는 달리고 시간은 흐르고. 밝은 땅, 어두운 땅, 쨍한 구름과 어둑한 달, 사람 없는 강과 산. 만 원 돈으로 비행기 비즈니스석에 앉은 것처럼 편안하고 듬직한 기분을 느끼며 시공간의 변화를 이리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여행은 버스뿐 아닌가 싶다.
양평은 또 어땠나.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지만 그곳에는 서울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하천과 뒷산과 논밭이 있었다. 쓸쓸하기도, 풍성하기도 한 땅. 다른 세상에는 다른 힘이 있었다. 다시 버스로 돌아오는 길. 오랜만에 깊고 큰 숨을 쉰 것 같았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