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넘었어도 힙합 등 후배들과 협업 앨범 낸 최백호 아침부터 붓 잡고 밤에는 마이크… 허스키 목소리, 학창시절엔 놀림 생계 위해 오른 무대가 천직으로 고비 많던 삶의 ‘찰나’ 담은 앨범… 여든, 아흔에도 좋은 노래 부를 것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자신의 화실에서 9일 가수 최백호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2009년 붓을 들기 시작해 여섯 차례 개인전을 연 그는 “최근 데생(소묘)에 한계를 느껴 홍익대 부근 미술학원을 알아보고 있다. 1년간 바짝 공부하면 대단한 화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일흔두 살 가수 최백호의 늦가을은 낭만적이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건물 20층에 있는 그의 화실은 너른 유리창 사이로 햇살이 내리쫴 제법 포근했다. 검은색 상의에 회색 청바지를 입은 그를 9일 화실에서 만났다.
“매일 오전 6시부터 그림을 그려요. SBS 라디오 ‘최백호의 낭만시대’를 오후 10시에 녹음하는데요. 서울 양천구의 방송국으로 가기 전까지 화실에서 그리는 거죠. 종종 글도 씁니다.”
벽에 잔뜩 포개져 있는 그림들과 바닥에 어지러이 놓인 물감은 어린 시절 미술선생님을 꿈꿨던 그의 삶에서 그림이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하게 했다. 본업은 가수이지만 2009년부터 그림을 그린 그는 개인전을 여섯 차례나 연 화가이기도 하다. “최근 비결핵성 항상균 폐질환으로 심하게 아팠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이 좋아 보였다.
“타이거JK와 협업하며 처음 힙합 음악을 들었어요. 수록된 발라드도 제 시대의 것과는 달라요.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과정이었죠. 음악이라는 게 맞닿는 지점이 있더군요. 힙합에 흥미가 생겨서 지코,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와 함께 힙합 앨범도 내려고 합니다.”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 탓에 학창 시절 음악시간에 노래를 하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가수를 꿈꾼 적은 없었다. 하지만 스무 살 때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뒤 생계를 책임져야 해 친구의 제안으로 부산의 라이브 클럽 무대에 올랐다.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을 꼽자면 무대에 서라는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거예요. 그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면 전 지금쯤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 희망 없이 매일 폭탄주만 마시고 다녔거든요.”
1976년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신인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지만 생계는 여전히 어려웠다. 돈을 벌기 위해 부산 라이브 클럽을 하루 6, 7군데씩 돌았다. 이 생활에 지쳐 1988년 아내와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정착에 실패해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1995년 ‘낭만에 대하여’를 내놨다. 곡은 이듬해 김수현 작가의 KBS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 나오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그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의 나이 마흔다섯이었다.
이젠 붓을 들고 화가의 삶을 살아가는 가수 최백호씨. 젊은 시절, 히트곡을 내고 유명세를 탔어도 한동안 생활이 어려워 부산지역 라이브 클럽을 돌면서 일해야 했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저만큼 늙어서도 노래하고 싶다는 뜻 아닐까요.(웃음)”
그는 과거에 묶여 있길 거부한다. “70대에게도 사랑은 있어요”라는 그는 소년 같았다.
“인간의 잠재력은 무궁하기에 애쓰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70대에도 좋은 노래를 불렀으니 80대, 90대에도 틀림없이 그럴 수 있을 겁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