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직원들이 모니터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0월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시장 전망을 하회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날 코스피는 3.37% 급등하고, 환율은 59.1원 급락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달 7.7%로 떨어졌다. 6월 9.1%로 정점을 찍은 후에도 줄곧 8%대에 머물러 오던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대에 진입함에 따라 금융시장에서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의 코스피, 코스닥 역시 3% 넘게 올랐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318원으로 60원 가까이 급락했다.
미국에서 발표된 숫자 하나에 세계 경제가 갑자기 핑크빛 무드에 휩싸였지만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긴 쉽지 않다. 지난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다음 달 금리 인상 폭을 줄일 뜻을 내비치면서도 더 오래, 더 높이 금리를 올리겠다고 했다.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린 우크라이나 전쟁도 겨울을 넘길 전망이다. 최근에는 세계 3위 가상화폐 거래소인 FTX 위기가 금융권으로 번져 ‘코인판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글로벌 경기침체가 막 문턱에 들어선 걸 고려하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의 어려움은 훨씬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3.2%의 높은 물가와 잠재 성장률에 못 미치는 1.8% 성장을 예고했다. 오일쇼크,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첫해를 빼면 전례 없이 낮은 성장률이다.
‘10월 물가 정점론’을 주장해온 정부와 한국은행은 미국 물가상승률 하락을 반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10월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전달보다 높아지는 등 국내 물가가 잡혔다는 신호는 없다. 한전의 막대한 적자 탓에 내년에는 큰 폭의 전기요금 인상도 불가피하다. 물가가 오른 만큼 임금을 높여 달라는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국제유가 역시 언제든 반등할 수 있다. 정부와 한은은 섣불리 긴장을 늦추지 말고 급변하는 상황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