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 24년만의 개입, 엔화 추가폭락 막아 달러 수요 커지면 엔화뿐 아니라 원화도 위기 모니터링 강화·통화 스와프 확대 필요하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9월 22일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자 엔-달러 환율이 145엔을 돌파했다. 그날 오후 일본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했고 환율은 142엔으로 떨어졌다. 일본은행이 시장에 개입해 달러를 팔고 엔을 산 것은 24년 만의 일이다. 한 달 뒤 10월 21일에는 엔-달러 환율이 150엔을 돌파했다가 순식간에 145엔으로 떨어진 일도 있었다. 일본은행이 150엔 선을 방어하기 위해 대규모로 시장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엔화가 이렇게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자 어느 날 갑자기 폭락하는 것은 아닌지, 엔화의 폭락이 한국 경제에도 위기를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감이 시장에 떠돈다.
엔화가 폭락할 확률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확률에 비유할 수 있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는 늘 긴장이 감돌았지만 예전에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목격하자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이 설마 대만을 침공할까 싶지만,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상황이 위태롭다. 엔화의 위기도 마찬가지다. 엔화가 순식간에 폭락할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지금의 엔화는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워 보인다.
엔-달러 환율의 향방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절상압력과 절하압력이 팽팽히 맞서 있기 때문이다. 절하압력은 우선 미일 금리차에서 찾을 수 있다.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자본이 이동하면서 엔을 팔고 달러를 사니 엔의 가치가 하락한다. 금리를 높이면 될 텐데 국채 때문에 높일 수가 없다. 일본 정부의 한 해 예산은 110조 엔 정도인데 신규 국채 발행 규모가 약 40조 엔이나 된다. 시장 금리가 오르면 신규 발행 국채의 약정이자율을 높여야 하는데 그러면 재정 적자가 악화될 것이고 국채 발행을 더 늘려야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금리 인상 시기를 가능한 한 늦추려 한다.
반면 절상압력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해외자산을 가지고 있고 그 자산에서 엄청난 소득이 발생하고 있다. 즉, 해외에 대기하고 있는 달러의 양도 만만치 않다는 말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멈출 기미가 보이면 언제라도 엔화 자산을 매입하기 위해 시장에 공급될 수 있는 달러다. 일본은행이 가지고 있는 외환보유액도 엔화의 가치를 지키는 보루 중 하나다. 대규모 시장 개입으로 지난 두 달 동안 3.5% 정도 감소했지만 여전히 2조 달러가량의 외환보유액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본에는 달러로 발행된 국채가 없다. 국채를 갚기 위해서는 엔화가 필요한데 엔화의 발권력을 가진 일본은행이 국채를 계속해서 매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이 혼란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미국이 엔화의 방어에 협조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이나 과거 일본 국채의 폭락에 베팅했던 헤지펀드가 큰 손실을 입었던 역사도 엔화의 폭락을 저지하는 요인 중 하나다. 엔화의 폭락에 베팅했다가 미일 금리차 확대가 멈추면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경계감이 있다.
그러나 만일 예상을 뛰어넘는 미국의 금리 인상, 혹은 그런 금리 인상을 유도할 수 있는 경제 현상, 즉 기대 이상의 인플레이션이 돌발적으로 발생하면 그것이 트리거로 작동해 절하압력이 우세해질 수 있다. 이때 시장의 달러 수요가 일본은행의 개입을 압도하면 엔화의 폭락이 불가능한 시나리오도 아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 즉시 원화도 일시적으로 폭락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대기업 실적이 견조한 편이기 때문에 혼란은 조기에 수습될 수도 있지만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운 엔화의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외환시장의 모니터링 강화는 당연하고, 국가 간 통화 스와프 확대도 필요해 보인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공조 체제를 논의하는 정부 간 채널도 미리미리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 최근에 터졌던 채권 문제처럼 숨은 복병이 혹시 없는지도 세심하게 살펴야 할 때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