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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조종엽]공복의 노심초사가 국민 안전 지킨다

입력 | 2022-11-12 03:00:00

조종엽 사회부 차장


‘몹시 마음을 쓰며 애를 태운다’는 뜻의 노심초사(勞心焦思)라는 사자성어는 고대 중국 우 임금의 고사에서 나왔다. 우 임금은 황하를 다스리는 13년 동안 밖에서 지내면서 자신의 집 앞을 3번 지나갔지만 모두 집에 들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우 임금은 노심초사하며 치수에 전념하느라 가정도 돌보지 않았고, 건강은 만신창이가 됐다. 그러나 그 덕분에 백성들은 범람하는 황하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됐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다음 날 기사를 준비하는 내내 안타까움에 손이 떨렸다. 생때같은 목숨이 150명 넘게 순식간에 길에서 스러졌다니…. 그저 참담할 따름이었다.

참사가 커진 원인과 관련해 경찰과 구청 등의 부실 대응 문제가 연일 드러나고 있다. 여러 잘못이 있겠지만 특히 ‘공복(公僕)’들이 있어야 할 때 제자리에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사고 당일 서울에 대규모 집회 시위가 예정돼 있었는데도 충북 제천에 내려가 등산을 하고 저녁으로 반주를 한 뒤 잠들었다가 보고 문자와 전화를 놓쳤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도 보고 전화를 놓쳤다.

서울청 112상황실을 지켰어야 할 당직 상황관리관 류미진 총경은 자신의 사무실에 머물렀다.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은 당일 집회 현장 대응 후 저녁식사를 하고 차량 이용을 고집하다가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지방에서 돌아온 뒤 현장에서 멀지 않은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한 명의 생활인으로 보면 이들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국정감사 등으로 지친 윤 청장으로서는 간만의 휴일을 맞아 재충전이 필요했을 수 있다. 김 청장은 3차례 전화를 못 받았지만 2분 후 4번째 걸려 온 보고 전화를 받았다. 서울청에선 상황관리관이 112상황실을 상황팀장에게 맡기고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관행이었다고 한다. 용산서장이 관내 집회 시위 대응을 마친 후 늦은 시간에 저녁식사를 한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자리에 있는 공무원은 필요한 시점에 제자리를 지키고, 언제든 긴급한 연락을 받아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공무원 모두에게 우 임금 같은 희생을 강요할 순 없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공무는 그만큼 엄중한 일이다. 그런데 경찰 등의 대응을 보면 ‘설마 큰일이 생기겠어’라는 방심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현장에선 사고 전부터 위험 신고가 이어졌고, 사고 후엔 아비규환이 펼쳐졌지만 보고는 늦었다. 당국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구조도 지체됐다.

구청이 사전에 인파를 통제하는 인력을 적절하게 배치했거나, 경찰이 112 신고에 적절하게 대응해 참사를 막았더라도 공무원들에겐 별다른 칭찬이나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잘한 일은 표 나지 않는 것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공무원의 숙명이니, 그 역시 억울해할 일은 아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내부보고서 삭제 지시 및 회유 혐의로 수사를 받던 용산서 정보계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잘잘못을 떠나 아까운 목숨이 비명에 가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