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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박중현]‘코인계 워런 버핏’의 몰락

입력 | 2022-11-14 03:00:00


플로리다주 비스케인만 해변에 위치한 미국프로농구(NBA) 마이애미 히트 안방구장의 이름은 ‘FTX 아레나’다. 거래량 세계 3위, 미국 1위 가상화폐 거래소 소유주 샘 뱅크먼프리드(30)가 작년에 1억3500만 달러를 주고 명명권을 구입해 간판을 고쳐 달았다. 코인 투자자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가상화폐로 돈을 벌어 현실 세계에 꿈의 구장을 사들였다”고 환호했다.

▷이 곱슬머리 청년은 재작년 포브스 선정 미국 400대 부자 중 32위를 기록했다. 20대로는 유일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하고 월가 트레이더로 일하다가 2019년 FTX를 세운 지 2년 만이었다. ‘코인계의 워런 버핏’이란 명예로운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FTX 파산 사태로 1주 전 160억 달러(약 21조1000억 원)에 달했던 그의 재산은 이제 0원이 됐다.

▷FTX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설립 목표에 따라 수수료 수입의 1%를 기부해 왔다. 공식 석상에도 반바지 차림으로 등장하는 수더분한 MZ세대 가상화폐 스타에 청년세대는 열광했다. 이런 면모도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사석에서 무례한 말투를 썼다는 증언이 쏟아진다. 급성장 비결이 정치권 로비라는 말도 나온다. 최근 미국 중간선거 직전 그는 정치후원자 순위 6위에 올랐는데 그의 회사는 500억 달러(약 66조 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밖에선 코인의 제왕으로 추앙받았지만 업계 안에서는 미운털이 박혔다. 정부의 가상화폐 통제 강화에 찬성했기 때문이었다. 파산의 직접 계기도 업계에서 시작됐다. 1위 거래소 바이낸스는 지난주 FTX 자체 발행 코인의 신뢰성을 문제 삼아 모두 처분했다. 미국 출생인 뱅크먼프리드는 바이낸스 최고경영자 자오창펑이 중국계란 걸 조롱하곤 했는데 파산 직전 자오는 그의 지원 요청을 뿌리쳤다.

▷이번 사태로 테라·루나 폭락 사태도 재소환됐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31)는 알고리즘으로 가치 하락을 막는다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해 거물이 됐다가 5월 가치 폭락으로 투자자들에게 400억 달러(약 53조 원)의 손실을 끼쳤다. “실패와 사기는 다르다”며 ‘폰지 사기꾼’이란 비판을 반박했던 권 대표는 현재 해외 잠적 상태다.

▷가상화폐 가격은 투자자의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폭락하곤 한다. 뱅크먼프리드는 고객자금 일부를 착복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FTX에 투자한 글로벌 금융회사가 많아 ‘코인판 리먼브러더스 사태’ 가능성도 제기된다.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꾀하면서도 투명성,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의 재무 상태, 자산 건전성을 재점검해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