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플레 고점론’에도 고금리 추세 이어질 듯 자금시장 경색 심해지면 우량 기업도 위기 정부 긴급 개입했지만 ‘일관성 훼손’은 막아야
최상엽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레고랜드 사태’가 채권시장뿐 아니라 자금시장 전반의 문제로 이어지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경제의 앞날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미국의 10월 소비자 물가지수가 전망을 하회하고, 주식시장이 강하게 반등하며 ‘인플레 고점론’도 나왔다. 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통화정책이 완화 기조로 급격히 선회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다소 위험해 보인다. 국내외 긴축 통화정책의 기조가 지속된다면 레고랜드 사태로 드러난 자금시장 경색 문제가 실물 경제로 전이될 수 있다.
먼저 지금처럼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경우 기업의 투자 축소나 가계의 소비 감소로 인해 경기가 둔화되는 것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긴축 통화정책이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경우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증폭될 수 있는 것이 문제다. 필자는 최근 연구를 통해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경제를 분석한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을 통한 기업의 직접 자금 조달보다 은행으로부터의 간접적인 차입 비중이 큰 한국 경제의 특수성을 살펴봤다.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고도로 발달한 미국 등을 대상으로 한 기존 연구는 한국 경제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은 불황기에 기업의 투자 수요가 감소하면서 은행 대출에 대한 수요도 함께 감소하는 반면 한국은 불황기에 다른 수단의 자금 조달이 더 어려워짐에 따라 은행 대출에 대한 수요가 오히려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의 대출 수요 증가를 잘못 해석할 여지가 크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 은행의 가계대출은 계속 감소하는 반면 기업대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22년 3분기 한국은행 대출 행태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대출 수요는 경기 불확실성 지속에 따른 유동성 확보 수요와 회사채 발행시장 위축 지속 등의 요인으로 인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대출에 대한 건전성 관리 수준은 불확실한 대내외 경기 상황 등으로 강화되는 양상이다. 기업의 자금 경색 문제가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실적 부진과 취약 기업의 재무건전성 악화로 인해 신용 위험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신용경색으로 볼 만큼 우려할 수준은 아니나, 급격히 변화하는 대내외 경제 환경의 영향으로 언제든지 상황은 악화될 수 있다.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상황이다.
얼마 전 필자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도움으로 현재 근무하는 학교에서 IMF의 세계 경제전망 세미나를 개최할 수 있었다. 참가한 IMF의 이코노미스트들이 제시한 전망은 어두웠다. 세계 경제의 수많은 하방 위험과 향후 경기 둔화를 시사하는 지표들의 증가는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우리 정책 당국의 긴급 유동성 공급은 금융시장의 단기적 안정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조치가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에 반하는 것이며, 경제 주체와 시장 참여자들에게 혼란을 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정책의 신뢰성 상실을 우려하는 타당한 비판이라고 본다. 따라서 당국은 지금의 정책이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한 미시적 관점의 정책이었음을 명확히 알려 물가 안정을 위한 긴축적 통화정책의 거시적 기조가 훼손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상엽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