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거래소 FTX 파산 신청] 보유 코인 他거래소 송금 사실 발각… 잘못 송금” 해명했지만 신뢰 흔들 자체 발행코인 ‘크로노스’ 26% 폭락… 바하마 당국, FTX 창업자 조사 시작
14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지원센터의 전광판에 비트코인, 이더리움, 바이낸스코인 등 주요 가상화폐 가격이 일제히 떨어진 모습이 표시됐다. 한 시민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11일 미국 가상화폐 거래소 FTX가 파산을 신청한 후 전세계 가상화폐 시장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글로벌 가상화폐 거래소 ‘FTX’ 파산의 충격파가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글로벌 거래소 ‘크립토닷컴’에서도 수상한 거래가 포착돼 고객 인출이 쇄도하는 등 후폭풍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주요 거래소들이 FTX처럼 고객 돈으로 ‘돌려 막기’를 하면서 재무 건전성이 우수하다고 포장해 왔던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샘 뱅크먼프리드 FTX 창업자는 본사가 위치한 바하마에서 경찰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 고객 돈 유용 의혹에 시장 신뢰도 추락
지난달 21일 크립토닷컴은 자체 계좌에서 4억 달러(약 5400억 원)에 달하는 32만 개의 이더리움을 비슷한 규모의 거래소 ‘게이트아이오’로 송금했다. 이후 게이트아이오는 자산 현황을 공개하며 고객 예치금이 많이 쌓여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FTX의 부실을 사실상 폭로했던 세계 1위 거래소 바이낸스 자오창펑 최고경영자(CEO)가 크립토닷컴의 고객 돈 돌려 막기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자오 창업자는 크립토닷컴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으나 “지갑(계좌)에 쌓여 있는 자산을 증명하기 전에 높은 금액의 거래가 오갔다면 위험 신호로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바하마 당국, FTX 조사
28세에 FTX를 창업해 30세에 억만장자가 됐던 뱅크먼프리드는 현재 본사가 있는 바하마에 머물고 있다. FTX 직원 상당수는 도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하마 규제 당국은 경찰과 함께 FTX의 범죄 여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법무부가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11일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던 FTX는 당시 제출해야 하는 서류의 상당수를 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전문 변호사조차 유동화가 가능한 FTX의 자산이 얼마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파산했던 미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는 파산 신청 직후 회사의 알짜배기 사업을 바클레이스에 넘겨 고객 및 임직원 일부를 보호했다. 반면 최대 66조 원의 부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FTX는 현재 정확한 자산이 얼마인지를 파악하는 일조차 쉽지 않아 투자자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
뱅크먼프리드의 몰락은 ‘제2의 스티브 잡스’로 불렸지만 거짓 의료 기술을 홍보해 유죄 판결을 받은 미 생명공학기업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스 창업자에 이어 또 다른 스타 경영자의 추락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 거물 투자자 유치 등을 통해 승승장구한 공통점이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인 뱅크먼프리드는 미 중간선거에서 5위 기부자에 들었다. 야당 공화당 기부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주는 “뱅크먼프리드가 민주당 기부자여서 당국 조사를 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블룸버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 극복을 위한 부양책으로 유동성이 넘쳐나 가상화폐 시장에 눈먼 돈이 쏟아지는 계기가 됐다며 “FTX 사태는 팬데믹 파티 후 숙취가 시작됐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