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존 재단 활용 등 해법 제시 고위급 회담서 협의 속도낼듯 日정부, 세부안엔 여전히 소극적… 현지 언론 “日기업 갹출에는 난색”
한일 정상이 13일 오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고 뜻을 모으면서 향후 협의 방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 양국 정상이 물꼬를 튼 만큼 협의에 속도를 붙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무 및 고위급 협의를 병행해 빠르면 연내 돌파구 마련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 정부는 이미 일본 측에 기존 재단을 활용하는 방식을 우선으로 하는, 복수의 안까지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본 측이 세부안 협의 단계에선 여전히 소극적인 입장을 유지해 조기 해결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 “정상이 책임 의지 보여준 자체가 큰 의미”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긴밀히 논의하고 조속한 해결을 위해 계속 협의해 나가자고 했다. 14일 정부 고위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민감한 현안을 정상들이 직접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자체가 상징성이 있고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이 두 달 전처럼 약식이 아닌 정식 정상회담을 갖고 ‘조속한 해결’까지 언급함에 따라 향후 협의에 나설 정부 당국자들의 부담을 덜어줬다는 것. 이 관계자는 또 “일본은 민감한 사안을 두곤 계산이 철저하다”면서 “그런 일본이 이번 회담에 의미를 부여해 나섰다는 게 관계 개선에 대한 일본 측의 달라진 기류를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양국은 이미 지난달 한일 외교차관 회담 등을 갖고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의견을 교환해 왔다. 향후 실무 및 고위급 차원에서 협의에 더욱 속도를 붙일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우리 정부는 시한을 정하진 않았지만 강제징용 문제를 풀기 위한 돌파구를 가급적 연내 찾는 걸 우선순위로 고려하고 있다. 해결 방안으론 행정안전부 산하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활용하는 안을 중심으로 논의하자는 우리 정부 제안에 일본 측도 큰 거부감을 보이진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 채무자(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기업)의 채무를 제3자인 재단이 대신 갚는, ‘병존적 채무인수’ 방식을 내세워 배상 문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 日, 여전히 세부안 논의에는 소극적다만 일본 측이 각론에선 여전히 소극적이란 게 걸림돌이다. 우리가 제안한 재단 활용 방안 등에 대해 특별히 거부감을 보이진 않았지만 명확한 입장도 전달하지 않고 있다는 것. 우리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일본 기업이 참여해야 협의가 가능하다고 보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본 아사히신문은 이날 “일본 기업이 기부 등 명목으로 재단에 갹출하는 것에 대해 일본 정부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TBS방송도 “양국이 조기 해결에 의견이 일치했지만 이제까지 방침을 확인한 것에 그쳐 큰 진전은 없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일 정상이 외교 당국 간 협의 가속화를 바탕으로 현안을 조속히 해결하기로 재차 합의했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의 일관된 입장으로 한국과 긴밀히 소통하겠다”고도 했다. ‘일본의 일관된 입장’이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을 가리킨다.
일본에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의 가장 큰 장애물은 기시다 총리의 낮은 지지율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자민당 내부) 파벌 간 견제가 심하다”면서 “소수파인 기시다 총리 입지로 볼 때 보수 지지층 반발을 감안해 (강제징용 해결에 나설) 결단을 내릴지는 회의적”이라고 내다봤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