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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동의 없이 공개된 희생자 명단…법조계 “법적 책임 물을 수 있다”

입력 | 2022-11-15 14:25:00

국가애도기간 마지막 날인 5일 밤 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시민들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2022.11.5/뉴스1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이 유족의 동의 없이 공개돼 파장이 커지고 있다. 법조인들은 피해자 동의 없이 이름을 공개한 만큼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반면 보도의 공익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온라인 매체 민들레는 전날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합니다’ 제하의 기사를 통해 희생자(이날 기준 158명) 중 155명의 이름을 공개했다. 이후 일부 유족 측의 항의가 들어오며 13명의 이름이 삭제됐다.

민들레는 “유가족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이름만 공개하는 것이라도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면서도 “희생자들을 익명의 그늘 속에 계속 묻히게 해 파장을 축소하려는 것이야말로 재난의 정치화이자 정치공학”이라고 주장했다.

◇피해자 동의 없는 명단 공개에 한목소리로 “법적 책임” 비판

법조계에선 피해 당사자의 동의 없는 명단 공개에 대해 법적 책임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전날 “유족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공개는 법적인 문제가 있다”고 했고, 일부 유족을 대리하는 민변도 “동의 없는 명단 공개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철회를 요청했다.

전범진 변호사는 “성명권 침해 등으로 위자료 청구 대상이 될 수 있을 듯하다”면서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 등으로 유족이 정신적 피해를 주장하면 위자료가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진욱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피해자들의 인적 사항을 확보한 행정기관에서 유족의 동의 없이 언론사에 명단을 제공한 것도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다만 현행법은 개인정보를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 정의해 이번 사건에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반드시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지난 2011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명단을 공개했다가 장제원 의원 등 의원 10명과 함께 조합원 8190여명에게 1인당 10만원씩 8억1900만원을 공동 배상한 사례를 꺼내기도 했다.

다만 당시 전교조 명단 공개는 조합원들의 실명뿐 아니라 소속 학교와 노동조합 가입 여부 등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공개됐다. 이에 재판부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및 단결권 등이 침해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실명 보도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공익’과 ‘사생활’ 사이

14일 오후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최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미사에 참석한 신부님들이 헌화 하고 있다. 2022.11.14/뉴스1

공인(公人)이 아닌 사인(私人)의 경우 원칙적으론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보도하는 게 맞지만 사안에 따라 보도의 공익성을 따져 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15년에 나온 ‘쿠르디 보도’다. 튀르키예 한 해변에서 익사한 채 발견된 시리아의 세 살 아이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은 난민에 대한 전 세계인의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켜 시리아 난민을 위한 기부금이 수십배 증가하고 난민 수용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등 언론의 공익적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가받는다.

김주연 변호사(법무법인 시화)는 “성범죄, 아동학대와 같이 피해자의 사생활 침해가 있으면 공개하지 않는 게 맞지만, 이번 참사는 이태원 길거리에서 발생한 사고로 국가적 재난이었다”면서 “이름이 갖는 특별함이 있다. 이름이나 신원 등이 공개되면 더 유족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고, 구체적인 추모가 가능해 공익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언론 전문 변호사도 “국가적인 큰 문제가 된 만큼, 국민의 알 권리와 유족의 사생활이 충돌하는 사안으로 봐야 할 것 같다”면서 “공적 사안에 대한 공표는 법원도 최대한 보수적으로 보는 편이라 위자료 인정에 소극적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유족 동의 없이 이름만 공개한 것은 사생활의 영역이지 공익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김한규 변호사(법무법인 공간)는 “국민의 알 권리가 우월하려면 참사 당시 용산구청장의 행적, 경찰청장의 동선처럼 공개 대상이 공적 영역에 있어야 한다”면서 “돌아가신 분들은 일반인들이고, 국민들은 이분들의 이름을 알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 부장판사는 “개인의 헌법적 권리인 기본권을 침해한 행위”라면서 “망자와 유족의 존엄권을 완벽하게 침해한 것이다. 미국이었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천문학적 액수가 인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