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범죄적 인과만 따져선 안 돼
대통령실 이전으로 폭탄 맞은 용산署
과중한 업무로 기본 소홀해졌을 수도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듯 국정 임하라

송평인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압사 사고 발생을 경찰청장이나 서울청장보다 훨씬 먼저 알았다. 그러나 대통령이 경찰청장이나 서울청장을 찾아 전화했다는 얘기는 없다. 관련 부처에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는 상투적인 발표가 있었을 뿐이다.
어쩌면 대통령이라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을지 모른다. 용산서장은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굳이 차를 타고 가겠다고 고집하면서 1시간 넘게 허비했다. 분노가 치밀지만 그가 10분 만에 도착했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 건 없어 보인다. 소방관들도 현장에 접근하는 데 애를 먹었으며 현장에 들어가서도 사망자를 빼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번 사고도 사고가 터진 후의 대처보다 사고 우려 신고가 들어왔을 때의 대처가 중요했다. 윤 대통령이 “경찰은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나”고 격앙한 것도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결국 이 사고는 선제적인 예방 조치가 결정적인 변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골목길 일방통행이나 지하철의 무정차 통과와 같은 간단한 조치만으로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용산서 정보과에서 사전에 어떤 내용의 보고를 올렸으며 상부에서 어떻게 처리했는지가 수사의 핵심이 돼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사고는 단지 범죄 혐의 차원에서만 인과관계를 따질 수준을 넘어서는 참사다. 무려 158명이 죽었다. 부상자도 198명이다. 수사를 넘어서는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윤 대통령 부부는 사고 직후 한남동 관저로 들어갔다. 그동안 윤 대통령이 서초동 자택에서 용산 대통령실로 출퇴근하면서 서초·용산경찰서 직원들이 초과 근무에 시달렸고 용산서 직원들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초과 근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 이전으로 서울에서 가장 조용한 경찰서 중 하나였던 용산서가 가장 바쁜 경찰서 중 하나가 됐다. 대통령이 드나들 때 경계를 해야 하고 시위대도 막아야 한다. 용산서장이 올 1월 부임할 때의 임무 목록에는 없던 일이다. 그는 사고가 터진 날도 시위대에 대응하느라 하루 종일 바빴다. 이태원을 관할에 둔 탓에 현 정부가 강조하는 마약 수사에도 관심을 둬야 했다.
개인이나 조직이 업무가 과중해지면 평소 제대로 하던 일도 못한다. 창의적으로 사고를 예방하는 일은 더욱더 못한다. 용산서에 임무가 늘어난 만큼 인력 보강이나 조직 강화가 이뤄졌는지, 용산서장의 유임이 용산서가 맡게 된 막중한 임무를 고려한 인사인지에 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검사가 다루는 형법적 인과관계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인과관계다. 대통령이라면 그런 인과관계까지 보고 정무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통령실 이전은 국가적 대사(大事)다. 대사란 아무리 신중히 결정해도 예상하지 못한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고, 예상했더라도 충분히 대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베이징의 하늘을 나는 나비의 날갯짓에 뉴욕에서 발생한 폭풍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다만 국정이란 건 늘 자원은 한정되고 임무는 막대해서 여유가 없는 것이므로 불요불급한 일에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고, 필요한 일도 하루아침에 뚝딱 결정해서는 안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