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유예 놓고 정치권 혼돈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는 2년여 전에 여야가 합의해 시행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손해는 이월해 나중에 보상받기 때문에 주식 하락기에도 개미 투자자들에게 훨씬 유리한 제도입니다.”(8일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
“금투세가 도입되면 국내 증시에 부정적인 충격을 줄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금투세를 당분간 유예하고, 주식시장에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정부안 통과에 협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14일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
여야가 금투세 시행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금융시장과 투자자들의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당장 한 달 반 뒤부터 금투세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금투세 시행을 2025년까지 유예하기로 했지만, 169석을 지닌 야당은 시행 유예가 ‘부자 감세’라며 내년 1월부터 시행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원천징수, 거래 내역 공유 등을 위해 전산 시스템을 구축 중인 증권사와 과세당국은 “빠른 결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 투자자 15만 명에게 수익 20% 과세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공동 입장문을 내고 “금투세는 예정대로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5대 증권사 고객 중 연간 투자이익이 5000만 원을 넘는 경우는 시장 상황이 매우 좋았던 지난 3년간조차도 전체 투자자의 0.9%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전날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금투세에 대해 “세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며 당론 선회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내년 시행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금투세는 주식, 채권, 펀드 등에서 얻은 총수익이 연간 5000만 원을 넘으면 수익의 20%(3억 원 초과분은 25%)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제도다. 2020년 법 개정을 마쳤고 내년 1월 시행 예정이었다. 하지만 올 9월 정부는 시행일을 2025년으로 미루는 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금투세가 도입되면 세금을 내야 하는 이들은 약 15만 명으로 추산된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10여 년 동안 평균 주식 거래 내역을 바탕으로 산출한 결과다. 지난해 국내 상장 주식 거래로 양도소득세를 낸 대주주 수와 비교하면 10배에 달하는 규모다. 현재 주식 한 종목을 10억 원 이상 갖고 있거나 코스피 상장사 지분 1% 이상(코스닥은 2% 이상)을 보유한 경우는 대주주로 보고 매매차익에 대해 20%의 세금을 매긴다. 금투세로 걷는 세금은 2020년 주식 양도소득세 세수보다 1조5000억 원 늘어난 약 3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계됐다.
○ 손해 발생 땐 5년간 수익서 제외
또 손실이 발생했을 때는 5년 동안 수익을 계산할 때 그만큼을 빼준다. 예를 들어 내년에 금투세가 시행되고 2023년 1년 동안 3000만 원 손해를 봤다면 2024년에 6000만 원의 이익을 냈더라도 이미 손해 3000만 원이 있기 때문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손실은 5년 동안 누적으로 합산되고 한도도 없다.
금투세는 해외에선 이미 시행 중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이자와 배당소득, 자본이득 등을 모두 합쳐 함께 과세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여러 금융투자 상품에 대한 소득을 ‘자본이득’으로 묶어 연 1만2000파운드(약 1800만 원)부터 10∼20%의 세금을 물린다. 미국은 이자와 배당 등 단기 자본이득도 모두 종합소득에 포함시켜 과세하고, 장기 자본이득은 15∼20% 세율을 적용한다. 일본은 이자와 배당, 자본이득을 모두 합쳐 20.315%가량의 세금을 물린다.
○ “지금이 세 부담 더 커” vs “국내 주식 투자 유인 감소”
유예 결정이 자칫 국내 자본시장의 신용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정치 상황에 따라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안마저 쉽게 뒤집힌다면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국 정책은 예측 가능성이 없고 불안정성이 높다’고 여길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진 가운데 채권 수익까지 세금을 매기게 되면 시장이 더욱 얼어붙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회사채 금리가 뛰면서 자산가들의 채권 투자가 늘었는데, 금투세 시행으로 이들마저 빠져나가면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채권 투자로 얻은 수익은 과세하지 않는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세종=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