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 정국에서 거야(巨野)의 위력이 재현되고 있다. 정부가 편성한 주요 예산을 거침없이 삭감한 더불어민주당이 정작 이재명 대표 등이 강조한 예산에 대해서는 대폭 증액에 나선 것. 국민의힘은 “예산안 폭주”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대응책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16일 동아일보가 국회 상임위원회 예산심사 현황을 종합한 결과 이날까지 9개 상임위원회에서 민주당표 예산 8조 6519억 원이 증액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서는 민주당 주도로 1조 2000억 원 가량이 삭감됐다.
민주당은 이날 국토교통위원회 예산소위에서 임대주택 관련 예산 6조7417억 원과 주거급여 지원 1조503억원을 증액해 단독 통과시켰다. 또 산업자원통상위원회는 이날 민주당이 요구한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융자에 1549억 원을 증액한 예산안을 합의 처리했다. 또 지역화폐 지원 예산은 정부가 올해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했지만 민주당은 관련 예산 7050억 원을 원상복구 시켰다. 지역화폐는 이 대표가 경기 성남시장 시절부터 강조했던 사업이다. 여기에 이 대표는 이날 “금융·주거 취약계층과 한계상황에 처한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에 대한 3대 긴급 민생 회복프로그램을 예산안에 반영할 것”이라면서 최소 1조2000억 원을 증액 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예산안 심사의 마지막 관문인 예결위에서 최대한 정부안을 유지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감액했지만 예결위에서 다시 논의할 것”이라며 “결국 (예산안) 전체적으로 여야가 논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예결위원장과 예산소위위원장을 모두 민주당이 차지한데다 예산소위는 국민의힘 6명, 민주당 9명이라 야당의 독주를 막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여야가 예산안 합의에 실패할 경우 정부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지만, 민주당이 표결에서 부결시킬 가능성도 있다. 국회 관계자는 “헌정 사상 최초의 준예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조권형 기자 buzz@donga.com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