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3인, 박물관 유물서 치유 영감 얻어 ‘마음복원소’ 개장 국립중앙박물관과 8개월 협업 “오랜 세월 버텨온 유물의 힘” 사랑-건강 등 인생고민 힐링
“사슴 두 마리가 굴곡진 토기 위에 위태롭게 서 있어요.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꼭 제 모습 같았죠.”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1층 가야실.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권명규 씨(24)는 올해 2월 박물관을 찾았다가 이곳에서 5세기 가야 토기 ‘사슴 장식 구멍단지’를 만났다. 그는 “먼지 쌓이고 구멍 나고 산산조각 난 유물들은 마음을 다친 이들을 치유하는 힘을 지녔다”며 “유물에게서 얻은 힘을 내 또래 친구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 씨가 대학생 카피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광고회사 TBWA 소속 대학생들이 올해 2월부터 국립중앙박물관과 협업해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마음을 치유하는 유물을 추천하는 ‘마음복원소’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실에서 14일 만난 송화연 서예희 권명규 씨(왼쪽부터). 이들은 “박물관 앞 정원과 탁 트인 호수 주변을 걸으면 숨통이 트인다. 친구들도 이를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사랑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고 응답한 이에게는 ‘고려시대 숟가락’을 추천하며 친한 친구에게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처럼, 이렇게 위로한다. “친구야 밥 먹었니? 며칠째 한숨만 삼켰잖아. 이제 우리 밥 한술 먹자.” 돈 때문에 고민인 이들에겐 중국실에 소장된 ‘진나라 기와’를 소개하며 “대출받아 집 샀더니 기와 끄트머리만 내 거다. 나머지는 다 은행 거!”라고 유쾌하게 전한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 주저하는 이에게는 조선시대 자 ‘진유척’을 알려주며 토닥인다. “그깟 자로 잴 수 있겠어? 우주만큼 커다란 네 가능성을.”
사이트를 디자인한 서 씨는 “마음을 닫고 방 안에 움츠러들어 있을 친구들을 박물관으로 이끌어내는 게 최종 목표”라고 했다. 그는 유물 추천 코스가 나오는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 ‘방문 예약’ 버튼을 넣었다. 설문 응답자가 박물관과 약속을 잡듯 달력에 방문 날짜를 예약하게 한 것이다.
이들은 또래에게 어떤 유물을 추천하고 싶을까. 권 씨는 조선시대 ‘측우기’를 꼽았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