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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사이다’ 일산대교 무료화의 텁텁한 뒤끝[오늘과 내일/박중현]

입력 | 2022-11-17 03:00:00

법원 결정·판결에서 경기도 3전 3패
이런 처분 반복되면 누가 투자하겠나



박중현 논설위원


전 국민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지난주 경기 고양 일산, 김포 주민 외에는 별 관심이 없는 뉴스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일산대교를 지나는 차에 통행료를 물리는 게 타당한가를 따진 일산대교 주식회사와 경기도의 소송 결과다. 작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려고 경기지사직을 던지면서 임기 중 마지막 결재로 통행료를 무료화한 데 대한 1심 판결이었다. 결과는 일산대교 측 승리.

지난해 10월 26일 당시 이 지사의 조치에 지역 주민들은 환호했다. 한강 다리 가운데 유일하게 비싼 통행료를 받는 일산대교를 지나다니며 쌓인 불만을 단번에 털어내는 사이다 결정처럼 보였다. 150만 지역 표심에도 영향을 미쳐 이 대표의 대권 행보에 날개를 달아줄 터였다. 하지만 그가 내린 경기도의 공익처분으로 시작된 무료 통행은 곧바로 제동이 걸렸다. 직후 일산대교 측이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경기도가 2차 공익처분을 내려 무료 통행을 연장했지만 일산대교 측도 다시 가처분 신청을 했고, 이 또한 받아들여져 작년 11월 18일 통행료는 되살아났다. 경기도는 일산대교가 총 22일간 받지 못한 통행요금 18억 원을 도민 세금으로 물어줘야 했다. 그리고 지난주 수원지법 행정4부는 “통행료가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정도가 이용자 편익에 대비해 기본권이 제약될 정도로 크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일산대교 측 승소 판결을 내렸다. 경기도의 3전 3패다. 후임 민주당 소속 김동연 지사가 항소 방침을 밝혔지만 법원의 일관된 판단을 볼 때 2심 승소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애초부터 상대가 만만치 않았다. 일산대교 주식회사는 국민연금의 100% 자회사다. 2008년 다리를 준공해 30년간 운영해 투자금을 회수하려던 대형 건설사들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움에 빠지면서 운영권을 국민연금에 넘겼다. 8년 적자를 내다가 간신히 흑자로 돌아선 이 다리를 지자체가 권한을 행사해 무료화할 경우 미래에 벌어들일 수입까지 물어줘야 한다. 시장이 평가하는 가치는 6000억∼7000억 원 정도다.

결정 당시 이 대표는 “보상 금액은 2000억 원대”라며 가치를 깎아내렸지만 제값을 안 치를 경우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이 손해를 본다. 경기도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였다간 배임 문제도 발생한다. 작년 문재인 정부의 국민연금이 가처분 신청과 소송을 낸 이유다. 경기도가 제값을 치르려면 관련 지자체들과 함께 큰돈을 나눠 내야 하는데 다리를 주로 이용하는 이 지역 운전자를 위해 다른 지역 주민, 비운전자가 낸 세금을 써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 대표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이 건이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국민연금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일산대교의 미래 가치를 축소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다만 큰 후유증이 따른다. 지난 정부가 담당 공무원과 한국수력원자력을 윽박질러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을 낮춰 잡음으로써 수명보다 일찍 폐쇄했을 때 바로 그런 식이었다.

일산대교 건설은 김대중 정부 때였던 2002년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임창열 경기지사가 결정했다. 당시 경제성이 낮게 평가돼 정부 예산 대신 민간자본을 끌어들여야 했다. 기업의 투자 없이는 세워지지 못했을 다리다. 20년 지나 그런 기억은 희미해지고 통행료 부담은 남았다. ‘사이다 맛 포퓰리즘’이 먹히기 딱 좋은 상황이다. 공공 부문이 상황에 따라 안면을 싹 바꾸는 일이 자주 생기면 더 이상 한국에 일산대교 같은 다리는 지어지기 어렵게 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