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미국 뉴욕 첼시 명소로 꼽히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매장 앞에서 이 매장 노조원들이 “직원 휴게실에서 해충이 발견됐다”며 사측의 위생 관리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측은 “어떤 해충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김현수 뉴욕 특파원
《 2일 미국 뉴욕 맨해튼 첼시에 있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2100m²(약 635평) 규모 매장은 칵테일바까지 있어 관광명소로 꼽힌다. 평일 오전이었지만 각국에서 온 관광객으로 앉을 자리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매장 앞에서 10여 명이 팻말을 들고 북을 치며 구호를 외쳤다.
“베드버그(빈대 종류)와 곰팡이를 막기 위해 나왔다. 직원과 고객의 안전과 건강이 중요하다!”
이 매장 노동조합원인 이들은 철저한 매장 위생 관리를 요구하며 파업 시위 중이었다.》
머리띠 두른 스타벅스 노조
한 노조원은 “직원 휴게실에서 베드버그가 발견돼 311(뉴욕시 민원 신고 전화)에 수도 없이 전화했다. 지역 정치인과 시 위생 당국에도 신고했지만 취해진 조치는 없다”며 “회사는 형식적으로만 검사하고 덮으려 해 어쩔 수 없이 파업에 나섰다”고 말했다.세계적인 매장에 해충이 있다는 게 놀라워서 스타벅스 본사에 물었더니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첼시 매장 직원이 베드버그로 의심되는 벌레를 발견했다며 신고해서 곧바로 해충 전문가를 보냈다. (하지만) 베드버그를 포함한 해충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매장 제빙기에서 곰팡이가 발견됐다는 노조 주장에 대해서도 “검사 결과 문제가 없었지만 새 기계로 바꿨다”면서 “‘워커스 유나이티드’가 첼시 매장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커스 유나이티드는 스타벅스 노조가 소속된 국제서비스노조연맹 계열 상급 단체다.
첼시 매장 베드버그 논란은 최근 미국을 휩쓰는 신(新)노동운동이 빚은 노사 갈등을 잘 보여준다. 신노동운동은 스타벅스, 애플, 아마존 등에서 직장 단위가 아니라 매장 단위 노조가 급증하는 현상을 말한다.
떠오르는 2030 노조원
올 4월에는 아마존 물류창고 노조가 출범했다. 뉴욕시 스태튼아일랜드 물류창고 직원들이 투표로 노조를 만들었다. 6월에는 무(無)노조 경영을 고집한 애플에서 애플스토어 노조가 처음 탄생했다. 270여 매장 중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인근 애플스토어 직원들이 찬성 65명, 반대 33명으로 노조 설립안을 가결시켰다. 지난달에는 오클라호마주 애플스토어에서도 노조 설립이 통과됐다. 애플스토어 노조는 미 최대 산별노조로 꼽히는 국제기계·항공우주노동자연합(IAM) 소속이다. 올 들어 구글파이버 협력업체, 트레이더조, 액티비전블리자드에서도 노조가 결성됐다.미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노동관계법을 집행하는 연방기관 노동관계위원회(NLRB)에 접수된 노동법 위반 조사 신청 건수가 올해 전년 대비 20% 이상 늘어 1950년대 아이젠하워 행정부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미국 노동사 연구자들은 신노동운동이 역사상 전례 없는 양상이라고 분석한다.
첫째, 업종이 다르다. 미 노조의 주축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일대 자동차나 철강 같은 중후장대 산업 노동자들이었다. 1980년대 이후 제조업이 쇠락하면서 최근 10여 년간 노조 가입률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반면 최근 결성되는 노조는 뉴욕을 비롯한 대도시 커피숍, 리테일 매장 소규모 집단같이 서비스직 중심이다.
둘째, 주체가 다르다. 주로 1990년대에 태어난 2030세대, 다시 말해 Z세대가 신노동운동을 주도한다. 인기 높은 기업의 젊은 직원들이 주체가 된 것이다. 노동운동 전문가 루스 밀크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더힐에 “노동운동이 다시 쿨(cool)해졌다”고 말했다. 팻말을 들고 행진하는 스타벅스 직원들 동영상이 조회수 3000만 회를 넘는 등 ‘Z세대 노동운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정을 위한 쿨한 도전’으로 인식된다는 것.
새로 결성된 노조는 임금 인상과 복지 향상을 요구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때 같은 회사 사무직 근로자는 재택근무로 전환하면서도 높은 임금을 받는데 현장 서비스 직원은 대면 근무를 지속하며 건강을 위협받았다고 느끼면서 노조 설립 의지에 눈을 떴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소년 때부터 SNS를 통해 사회 변혁에 관심을 가진 1990년대생이 조직에 늘어난 것도 기여했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대 초반 월가 거대 금융기업에 반발한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 여성 권익을 옹호하는 ‘미투(#MeToo)’ 운동, 흑인 인권 운동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에 영향을 받았다. 스타벅스 버펄로 매장 노조 결성의 주역인 바리스타 재즈 브리색(24)은 사회 변혁의 상징으로 조명되기도 했다.
경기 침체 영향 받을까
지난달 미국 뉴욕주 올버니 아마존 물류창고 직원들이 노동조합 설립 투표에 참여하라며 행진하고 있다. 하지만 투표 결과 반대 66%로 올버니 물류창고 노조 결성은 무산됐다. 올버니=AP 뉴시스
앤디 재시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4, 6월 언론 인터뷰에서 “노조가 없는 것이 임직원에게 낫다” “노조에 가입하면 직원은 동기 부여를 덜 받게 되고 느려지며 관료화할 것” 등이라고 말했다가 조사를 받게 됐다. NLRB가 이 발언들이 연방 노동법 위반 소지가 강하다고 밝힌 것이다. 올 3월 현업 복귀한 스타벅스 창업자 하워드 슐츠도 “노조 사업장에는 바리스타 처우 개선 같은 복지 혜택을 적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가 노조와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친(親)노조 성향인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신노동운동을 반기며 이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5월 아마존 노조 지도부를 백악관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신노동운동 노조는 사측의 노조 결성 방해 움직임을 NLRB 같은 노동 관계기관에 신고하는 등 정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신노동운동의 복병은 경기 침체다. 미 노동시장은 구인난이 여전하다. 하지만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4%대까지 올리는 고강도 재정 긴축을 펴고 있다. 결과적으로 실업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미 빅테크 대기업들이 대규모 감원에 들어가는 등 내년에는 실업률 상승이 불가피하다. 노동운동 노사관계 전문가인 토머스 코컨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대 교수는 WP에 “만약 경제가 정말 가라앉는다면 (노동운동) 스토리가 달라진다. 다시 모두 직업 안정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980년대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때 노조 가입률은 하락했다.
반면 신노동운동이 전례가 없는 만큼 공정한 대우를 중시하는 새로운 세대의 노조 설립 의지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