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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쓴 여자[이은화의 미술시간]〈241〉

입력 | 2022-11-17 03:00:00

로렌초 리피 ‘시뮐라시옹의 우화’, 1640년경.


가면은 얼굴을 감추거나 꾸밀 때 쓰는 물건이다. ‘거짓으로 꾸미는 의뭉스러운 얼굴’이나 태도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17세기 이탈리아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로렌초 리피가 그린 이 그림에는 가면을 든 여자가 등장한다. 오른손에는 가면을, 왼손에는 석류를 들고 있어 작품의 의미가 모호하다. 도대체 이 여자는 누구이고, 화가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리피는 피렌체 출신이지만 마흔 살에 결혼한 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로 가 그곳의 궁정화가가 되었다. 그가 34세 때 그린 이 초상화는 피렌체 시절에 그린 것으로 오랫동안 ‘가면을 쓴 여자’로 불렸다. 가면의 존재만으로도 여성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탈리아를 연상케 한다. 희극의 여신인 탈리아는 예술의 여신 뮤즈 중 한 명으로 미술 작품에서는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손에 들고 담쟁이덩굴 왕관을 쓴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가면만 들었다면 탈리아의 초상이라 하겠지만, 여성은 석류까지 들고 있어 도상학적 해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많은 씨앗들로 이루어진 과일인 석류는 기독교 미술에서 종종 통합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유대교에서는 신성함과 다산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에서는 지하 세계의 신 하데스가 절세미인 페르세포네를 아내로 삼기 위해 먹인 열매로 죽음과 풍요를 상징한다.

‘시뮐라시옹의 우화’라는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프랑스어 ‘시뮐라시옹’은 모의실험을 뜻하는 영어 단어 ‘시뮬레이션’과 같은 말로 모방, 모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림 속 여성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진짜를 모방한 가짜의 우의적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희극의 여신 탈리아의 가면을 쓴 여성은 풍요와 아름다움, 통합을 제시하는 듯하나 사실은 그것이 속임수이고 거짓이라는 것이 화가가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이 17세기 화가는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화려하고 아름다운 가면을 쓴 사람일수록 경계하고 의심하라고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 같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