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동성 간 결혼의 효력을 인정하는 법안이 연내 상원을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이번 중간선거에서 상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게 되자 진보적 의제에 속도를 낸 것이다.
미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은 16일(현지 시간) 상원에서 ‘결혼 존중 법안’에 대한 예비투표가 찬성 62표, 반대 37표로 가결됐다고 보도했다. 법안은 상하원의 최종 표결을 거친 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야 발효된다. 하지만 이날 상원 표결에서 민주당 의원들 뿐 아니라 공화당 의원 12명도 찬성표를 던져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막을 수 있는 최소 인원(60명)을 충족한 만큼 법안 처리의 가장 중요한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AP통신은 이르면 이번 주, 늦어도 이번 달 안에 표결이 이뤄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결혼 존중 법안은 동성 간 결혼이 연방 차원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인종이나 성별 등을 이유로 결혼의 효력을 부정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은 2015년 동성결혼을 보장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보수 성향의 미 연방대법원이 올해 6월 50년 만에 낙태권 폐지 판결을 낸 만큼, 동성혼에 대한 판결도 뒤집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날 표결에서 범(凡)민주당 의원 50명 외에 공화당 의원 12명이 찬성표를 던진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우리는 낙태 금지가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았다. 여성들은 낙태권을 보호하기 위해 압도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했다”라고 진단했다.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이번 법안이 통과된다면 지금까지 상원이 이뤄낸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공화당 지지층이 동성혼에 우호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퓨리서치센터가 15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성결혼 합법화에 응답자 61%가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 중 18~29세 응답자의 64%가 “동성결혼의 합법화가 사회에 좋은 일”이라고 응답했다. 65세 이상 연령층에서 나온 응답(30%)의 두 배를 뛰어넘은 것이다.
한편 동성결혼에 반대 입장을 견지해왔던 종교계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가톨릭·개신교도에서도 옹호여론이 커졌고, 보수 성향의 모르몬교(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도 15일 성명서를 통해 “동성 결혼이 계명에 반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동성 커플의 권리도 지지할 것”이라며 결혼존중 법안을 지지한다고 밝힌 것이다. WP는 “성소수자 권리를 수십 년간 공격해온 모르몬교에서 나타난 눈에 띄는 변화”라고 분석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