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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것과 기괴한 것은 한끝 차이”…그로테스크의 미학

입력 | 2022-11-17 14:54:00


14일 서울 종로구 보안1942. 폐관한 여관을 활용한 전시공간답게 스산한 분위기가 풍겼다. 전시작들은 높이 2m 넘는 종이에 그려진 지렁이나 돈벌레 형상을 띤 불화들이다. 음습함을 한층 돋우는 이들 작품은 20일까지 진행되는 전시 ‘귀불’의 출품작. 서울시립미술관의 ‘2022년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된 박웅규 작가(35)의 것들이었다.

박 작가는 2016년 첫 개인전을 진행한 신진 작가지만, 그의 작품은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활용하는 소재가 통상 더럽고 불쾌하게 여겨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의외의 답을 했다. “저는 예쁘다고 생각해서 그려요.” 본인이 담대한 성격은 아니란다. 작가 또한 “벌레를 아주 무서워한다”고 했다. 두렵지만 그리게 되는 이 소재들의 매력은 무엇일까.

서울 종로구 보안1942에서 진행 중인 ‘귀불’에서 작품 설명하고 있는 박웅규 작가의 모습.  안철민 기자 acm08@donga


“언젠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나방을 관찰한 적이 있어요. 엄숙해 보이더라고요. 늘 보던 벌레의 징그러움과 달랐습니다. 벌레의 반복적인 마디의 구조에서, 촘촘하게 솟아있는 잔털에서 완전한 균형미를 느꼈어요.”

올해 박 작가가 불화를 전면 차용한 것도 “불화의 대칭적인 조형미 때문”이다. 그가 그린 불화의 일부 보살은 벌레의 형태를 띠고 있다. 불화와 벌레의 공통점인 규칙적인 장식들은 때로는 강박적으로 다가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묘하게 아름다워 보인다. 그는 “벌레를 보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다고 한들, 그 감정은 벌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벌레를 대하는 제 태도와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작가는 ‘성스러운 것과 기괴한 것은 한끝 차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이 생각의 뿌리에는 유년 시절의 경험이 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박 작가의 옛집에는 십자가와 마리아상만 100여 개가 보관돼있었다. “밤에 집을 돌아다니면 그 성스러운 물건들이 마치 저를 감시하는 공포스러운 존재처럼 느껴졌다”던 작가는 “부정과 긍정이 서로 극단을 향하다보면 어느 지점에서 만난다. 둘은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이 철학은 인간이라는 존재에도 통용된다. 박 작가가 초기부터 그려온 ‘가래 드로잉’을 보면, 스스로가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는 내 안의 무언가를 조금은 포용할 수 있을 듯하다. “가래를 보고 ‘내 몸 안에 더러운 것들이 축적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일종의 자기혐오에서 드로잉을 시작했어요. 웃긴 건 어릴 적 가래를 보고 사리(舍利)라고 착각했던 적이 있었다는 거죠.”

그는 불쾌감을 극복하거나 해소하기 위해서 벌레나 성상을 그리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괴로운 작업이지만 이제는 조금 유희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게 된 것 같다. 나쁘다고 생각됐던 것들을 제 방식으로 소화해낸 것”이라는 말이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