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이뤄진 한중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에 중국이 나서줄 것을 요청했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반응은 미지근했습니다. 북한은 오늘 오전 최선희 외무상 담화를 통해 “미국이 동맹국들에 대한 ‘확장억제력 제공 강화’에 집념할수록, 우리의 군사적 대응은 더욱 맹렬해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미일 3국 프놈펜 성명에 담긴 대북 공조 움직임에 즉각 반발하고 나선 것이죠. 이어 담화 발표 2시간도 지나지 않아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무력시위를 재개했습니다. 중국이 과연 북한을 통제할 수 있을까요, 중립기어 박고 하나씩 팩트체크 해봤습니다. 오늘은 한반도 박사 신석호 부국장과 함께 대담을 나눴습니다.
●시진핑, 尹에 던진 3가지 경고
▷조아라 기자
지난 <중립기어>에서 이승헌 부국장은 한중 정상회담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번 순방은 10점 만점에 최대 8점까지도 줄 수 있다고 평가하셨는데요. 신석호 부국장은 몇 점으로 보세요?
▶신석호 부국장
8점 주신 건 충분히 이유가 있죠. 동맹국인 미국과 잘 지내야 하는 게 외교 1순위고 인접국인 일본과도 북한 문제 해결하는 데 공감대를 이뤘기 때문이죠. 다만 한중 정상회담 결과나 북한 반응을 보면 미일과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대가가 따른다는 걸 알 수 있죠. 중국의 미지근한 반응과 북한의 즉각적인 반발은 가장 강력한 국가와 가깝게 지내는 ‘편승 외교’의 비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런 비용까지 감안하면 저는 7점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아라 기자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성사가 됐는데요. 철통같은 한미일 3국 공조를 본 시 주석 입장에선 심경이 불편했을 텐데 왜 회담장에 나섰다고 보세요?
▶신석호 부국장
2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회담이 이뤄졌는데 1차적으로는 상견례에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내년부터 시작하는 시진핑 3기 체제에서 상당기간 한국 파트너는 윤 대통령이거든요. 더 본질적인 이유는 역사상 한국 외교가 이렇게 미일, 특히 일본과 밀착한 적이 없었거든요. 한국 입장에선 중국과 북한의 위협이 커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중국 입장에선 한국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겁니다.
통역을 빼고 나면 10분 정도의 짧은 회담이었다는 평가도 나오는데요.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시 주석은 뼈 있는 발언을 꽤 많이 던졌는데 저희가 3가지 정도로 추려봤습니다. 특히 북한 문제에 대해선 윤석열 정부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을 지지할 의사가 없어 보여요.(아래 그래픽 참조)
▶신석호 부국장
‘북한이 호응해온다면’ 이라는 단서를 달아 공을 한국에 다시 던졌죠. 앞서 “한국이 남북 관계를 적극 개선해나가길 기대한다”고도 했잖아요. 중국은 사실상 도와줄 의사가 없다고 한거죠.
●북한 없으면 이 시린 중국
▷조아라 기자
두 번째 주제는 북중 관계가 ‘순망치한(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의 관계 같다고 해서 ‘북한 없으면 이 시린 중국’이라고 달아봤습니다.
중국에게 북한은 굉장한 완충지역입니다. 이번에 시 주석이 상무위원을 모조리 측근으로 채웠잖아요. 그게 사회주의 일당 독재국가의 습성이에요. 중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을 통해서 자유민주주의 분위기가 확산되는 건데요. 북한이 그걸 지금 막아주고 있거든요. 중국 입장에선 북한이 사회주의 독재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야 되는 거죠.
▷조아라 기자
시 주석의 반응을 보면 현재로선 중국이 북한 문제에 개입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이는데요. 북한 문제에 거리를 두려는 중국의 태도 앞으로도 계속될까요?
▶신석호 부국장
과거엔 중국의 태도가 좀 달랐어요. 20년 전 중국이 북한 문제에 개입하게 된 대표적인 일화가 있죠. 2002년 10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 장쩌민 주석을 자신의 텍사스 목장에 불렀어요. 미국은 북한이 우라늄탄을 개발하고 있단 정보를 입수하고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죠. 당시 장 주석은 “북한은 당신(부시)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라고 하고 잘랐어요. 그 다음 해에 부시 대통령이 다시 장 주석에게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하면 미국은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죠. 결국 부시 대통령이 장 주석에게 “외교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은 북한에 군사 공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협박을 했고 그제서야 장 주석이 나서면서 중국이 6자회담을 통해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열어줬죠.
▷조아라 기자
중국 원자바오 총리도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한중일 정상회담을 통해 여러 차례 만나며 남북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했잖아요.
▶신석호 부국장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 자세히 나오는데요.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원자바오 총리가 ‘마담뚜’처럼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노력했어요. 원자바오 총리는 2009년 두 차례 “김정일을 만났으면 좋겠다”며 이 전 대통령에게 북한의 의사를 전달했어요. 그런데 북한이 조건을 달면서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았고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이 벌어집니다. 원자바오 총리가 세 번째 개입한 게 2011년 5월이에요. 원자바오 총리가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남북대화가 잘 안된단 얘길 듣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중재에 나섰죠.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측의 불만을 들은 뒤 도리어 대화의 판을 깨버렸죠. 시 주석도 2013년 1기 체제 첫해에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나 ‘북핵 불용’의 원칙에 합의했죠. 시 주석은 그 뒤로 5년 동안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2018년 북한이 국제무대에 나오고 중국도 힘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북한과 다시 밀착하기 시작했죠.
현재는 중국이 북한 문제에 개입하기엔 구조적으로 안 좋은 상황입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과 시 주석이 미 캘리포니아주 랜초 미라지에서 만나서 얘기하던 때와는 너무 다른거죠. 미국이 중국을 사실상 봉쇄하면서 중국의 경제 상황도 나빠지고 3연임으로 시 주석의 정치적 부담도 커진 상황이잖아요. 중국은 지금 북한 문제에 개입할 여유가 없어요.
●똘똘 뭉친 한미일…한국의 외교 전략은?
▷조아라 기자
미중 양국 정상은 3시간 동안 얼굴을 맞대고 긴장 완화를 약속했는데요. 정면충돌의 위험은 일단 사라졌다고 봐야할까요?
▶신석호 부국장
한 번의 정상회담이나 실무자들의 대화로 방향이 바뀔 수 있는 국면은 벗어났다고 봅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 의미는 대화의 끈은 열어놓자는 합의한 데 있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내년 초 중국을 방문한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국제정치 역사를 보면 세계 최강국과 두 번째 강대국 간의 관계는 쉽지 않아요. 당분간은 미중이 서로 경쟁하면서도 실무적인 분야에선 협력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조아라 기자
아세안 정상회의, G20 정상회의라는 외교 무대를 통해서 한미일-북중러 대결 구도가 뚜렷해졌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미국은 중국과 첫 대좌하는 외교무대에서 한국, 일본과의 협력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강한 한미일 공동성명을 낼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요.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해야 되는 숙명을 안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대응해야 될까요?
▶신석호 부국장
아까 말씀드린 대로 ‘편승외교’가 가장 쉬운 외교정책입니다. 하지만 편승외교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르거든요. 대통령실은 그런 우려에 대해 “중국과 충분한 외교적 공간이 있다”고 입장을 밝혔는데요. 북한 문제에 대해선 미일과 협력해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가져야 되고요. 그렇지 않은 문제에 대해선 미국과 일본의 요구사항을 충분히 수렴하는 선에서 우리 국가이익도 챙겨야 되죠. 중국과 열려있는 외교적 공간을 충분히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조아라 기자 like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