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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가 남긴 것들[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68〉

입력 | 2022-11-18 03:00:00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2007년 불행히도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허베이스피릿호(號)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그 결과로 5000억 원가량의 피해가 났다. 그러나 가해자에 해당하는 선박 운항자의 책임은 50억 원 정도로 제한되었다.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손해를 입힌 자가 전액 배상해야 한다면서 제도의 개선을 주장한다.

하지만 현행 배상 제도에 대해 존치론자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연역적이고 정책적인 것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었다. 대항해시대는 시장의 확대를 의미했다. 신대륙에서 발견한 신기한 물건을 유럽으로 싣고 왔다. 유럽 사람들은 상품을 만들어 신대륙으로 가져가서 비싸게 팔아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품의 이동은 모두 나무와 돛으로 된 범선에 의해 이루어졌다. 풍랑을 만나거나 암초를 만나면 범선은 쉽게 침몰했다. 18세기에도 출항한 무역선 10척 중에서 돌아온 선박은 7척밖에 없다는 자료를 보았다. 16세기 말을 그린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무역선의 침몰이 소재가 될 정도였다. 아무리 일확천금도 좋지만 자신의 재산과 선원을 모두 잃어버리는 해운 산업은 선주들이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해운업은 당시 농업을 제외한 유일한 산업이었고 국가로서도 이를 장려해야만 했다. 그래서 각국은 선주들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손해배상 책임을 감해주는 선주책임제한제도가 대표적인 것이었다.

현대 보험제도의 시초가 된 해상보험도 이때 생겨났다. 침몰한 선박의 선가를 그대로 전보받는 선박보험이 그중 하나였다. 화물을 잃어버린 화주도 적하보험제도를 이용해 손해를 보지 않게 되었다. 유류 오염 사고 시 피해자에 대한 책임에 대비하여 선주들이 모여서 상호보험을 만든다. 자신들이 보험자이자 피보험자가 돼 보험료를 갹출하여 손해를 보상해준다. 선주책임상호보험이다.

우리 산업의 근간인 주식회사 제도도 해운에서 왔다. 그 기원은 1601년 동인도회사였다고 한다. 대항해시대 선주들은 무역을 위해 여러 척의 선박과 선원 고용을 위한 큰 자금이 필요했다. 큰돈을 들여 출항시킨 선박이 돌아오지 않아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은 큰 위험이다. 따라서 이를 회피하는 절묘한 방안이 개발되었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업을 하도록 하자. 그 몫은 주식으로 나눠주고, 이 사람들의 책임은 구입한 주식으로 한정을 하자. 법인이라는 가공의 단체를 만들어 이 법인이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도록 하자.” 이렇게 해서 주식회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주식회사 제도 아래에서 사람들은 안심하고 자본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항해시대의 자금 조달이 용이해졌고 산업혁명은 가속화되었다.

우리 생활 곳곳이 바다와 이렇게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회사법을 강의하는 나는 주주의 유한책임이라는 대목에서 신이 난다. 선장인 상법 교수가 콜럼버스로부터 주식회사를 설명하니까 재미도 있고 설득력도 있다. 학생들은 마치 대항해시대의 선주가 된 듯이 들뜨고 밝은 표정이 된다. 학생들은 나의 얼굴에서 대항해시대의 선주나 캡틴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