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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푸틴이 협상 원해… 공개 회담하자”

입력 | 2022-11-18 03:00:00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협상을 원한다는 시그널을 서방 국가들로부터 전달받았다”며 러시아에 공개 협상을 제안했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15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연관성이 주목된다. 번스 국장은 14일 튀르키예에서 러시아 정보 수장과 회동했다. 최근 미 고위 당국자들이 잇따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는 등 미국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협상에 나설 것을 설득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이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가 공개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전형적인 비공개 협상 대신 공개 회담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러시아와의 협상에 거리를 둬온 젤렌스키 대통령이 협상 여지를 연 것으로 풀이된다.

마크 밀리 미군 합참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가 이른 시일 안에 러시아를 자국에서 몰아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며 올겨울 정치적 해결을 위한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CIA국장 만난뒤 협상 거론… 美 “올겨울 시작할 수도”


美합참의장 “러軍 약할때 협상해야”
美정보-안보수장 잇달아 우크라에
수세 몰린 푸틴, 돌파구 모색 여지
‘폴란드 낙탄’엔 美-우크라 이견


우크라軍 전사자 가족의 눈물 16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성미카엘 수도원에서 러시아군과 교전 중 사망한 우크라이나 군인의 장례식이 열렸다. 전사자의 부인이 관 위에 엎드려 슬퍼하고 있다. 러시아는 전날 키이우와 르비우 등 우크라이나 전역 16개 지역에 약 100발의 미사일을 발사하며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키이우=AP 뉴시스

러시아와의 협상 불가론을 고수하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 의사가 있다고 밝혀 주목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어느 국가인지 밝히지 않은 채 “서방 국가들을 통해” 푸틴 대통령의 직접 협상 신호를 전달받았다며 “(이 국가들에) 비공개 협상 대신 공개 회담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푸틴 대통령의 직접 협상 의사를 전달한 국가는 미국으로 추정된다.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14일 튀르키예(터키)에서 러시아 정보 수장과 비공개 회동을 하고 15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난 뒤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협상 시기, 내용은 우크라이나가 결정할 일”이라며 협상 압박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고위 인사들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협상에 나설 것을 설득했을 가능성이 크다.


○ 美 합참의장 “겨울에 대화 시작될 수도”
미국 등 서방에선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을 위한 평화 협상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이날 “우크라이나는 최대한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압박해야 하지만 올해 겨울이 되면 전술 작전이 자연스레 느려질 수 있다”며 “최소한 정치적 해결을 시작하기 위한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신은 강하고 적은 약해졌을 때 협상을 원하게 된다”고도 했다.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으로 러시아 점령지 탈환을 이어가는 현 국면이 협상의 적기란 의미로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으로 불법 병합한 헤르손까지 빼앗길 정도로 수세에 몰렸다. 알자지라는 13일 “푸틴 대통령이 평화 협상에 응해 크게 잃을 게 없다. (그는) 조건 없이 협상에 응할 준비가 됐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고 했다.

러시아의 경제난도 심각해지고 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통계청은 올 3분기(7∼9월)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 대비 4% 줄었다고 16일 발표했다. 러시아 경제는 2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뜻하는 ‘경기 침체’에 돌입한 것이다.

전쟁 장기화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타격이 큰 만큼 두 정상이 협상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폴란드 낙탄 두고 바이든-젤렌스키 불협화음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협상 조건으로 러시아군의 완전 철군과 우크라이나 영토 반환을 밝혀 왔고, 푸틴 대통령이 불법 병합한 우크라이나 동부 영토를 돌려줄 가능성이 작은 만큼 두 정상 간 회담이 성사될지는 불투명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5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화상 연설에서도 러시아 군 철수 및 적대 행위 중단 등을 평화 계획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폴란드에 떨어진 미사일이 우크라이나의 방공 미사일이라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잠정 결론을 두고 서방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불협화음이 일고 있어 서방의 협상 중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6일 “나는 그 미사일이 러시아가 쏜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군의 보고를 토대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7일 G20 정상회의를 마친 뒤 귀국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그것은 증거가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나토 당국자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상황이 점점 우스꽝스러워지고 있다”며 “아무도 우크라이나를 비난하지 않고 있지만 그들은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하면서 우리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는 미사일보다 더 파괴적”이라고 비판했다.

러시아는 16일에 이어 17일에도 우크라이나 전역 도시들에 무차별 미사일 공격을 이어갔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