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세계가, 지속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루어왔다고 하지만 세상의 일부는 여전히 가난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기준을 마련한 뒤 자립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으로 편입시키면 될 듯하다. 그런가?
‘빈곤 과정’ 책 표지
서울 난곡에서,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과 남부 선전시(深圳市)에서 수많은 가난과 마주치며 빈곤에 천착해온 ‘빈곤 과정’(글항아리)의 저자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예상 가능한 답안을 거부한다. 또는 ‘간단히 답하기를 일부러 실패한다.’ 그의 연구 속에서 가난함의 범주는 계속 확장된다. ‘기존의 논의와 불화하며 우리 시대 빈곤에 관한 사유를 확장하는 것’이 저자가 밝히는 의도다.
사회가 빈곤을 다루는 관심의 중심에는 기초생활수급제도가 있다. 이 제도가 오랜 노력의 성과임은 저자도 인정한다. 그러나 돌아보아야 할 지점들은 존재한다. 빈곤을 가려내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가난은 ‘증명해야 하는’ 것이 되고 그 대상자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경험을 누적시킨다. 모친 명의로 당장 쓰러질 듯한 집 한 채가 있다고, 오래전 소식이 끊겼어도 자식이 있다고 수급의 바깥으로 추방된다. 심장병을 앓는 이가 질병 수당과 실업 수당을 받기 위해 분투하다 그만 죽고 만다는 미국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는 먼 현실이 아니다.
올해 반(反)빈곤운동 단체들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선정 기준으로 사용하는 기준중위소득을 인상하고 급여수준을 현실화할 것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글항아리 제공
대학 교수로서 10년 동안 ‘빈곤의 인류학’ 수업을 진행해 온 저자는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빈곤 퇴치 프로젝트에도 주목한다. 자신들도 결핍으로 위협받는 세대가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빈곤 레짐(규범 틀)에서 새로운 지식과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프론티어’로 뛰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봉사와 여행, 취업에 대한 욕구가 모호한 상태로 뒤섞여 있으며 이들에게 재미있고 창의적인 활동으로 다가온다고 봤다.
빈곤과 반(反) 빈곤의 모색이 만드는 모순의 광경들이 한국 사회만의 것일 리는 없다. 책 한가운데엔 저자가 중국에서 마주친 현장 사례들이 놓인다. 중국 선전에서 그는 2010년 연쇄 자살사태가 벌어졌던 전자기기 회사 ‘폭스콘’의 여성 노동자를 만난다. 가혹한 환경에서 나름 자부심을 가졌던 그는 폭스콘을 나온 후 여러 종류의 노동을 하며 분투하지만 소외와 체념도 계속 쌓여간다. 하얼빈에서는 홍수로 시골집을 잃은 뒤 자기만의 집을 갖기 위해 애쓰다 좌절하는 중년 여성을 만난다. 두 사례 모두 저자의 시선은 ‘체념과 소외의 누적’으로 향한다.
가혹한 노동 환경으로 인해 2010년 연쇄 자살 사태가 벌어졌던 중국 전자기기 회사 폭스콘 작업 현장.글항아리 제공
기존 논의들을 모으고 마무리할 마지막 장에서 저자의 시선은 오히려 인간을 넘어 지구로 확장된다.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착취가 자연을 ‘가능한 한 저렴하게 일하게’ 하며 인류세(人類世)적 빈곤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 별에 거주하면서 매 순간 접촉하는 것들을 단지 소비할 자원이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저자는 호소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