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도쿄에서 문을 연 '디앤디파트먼트'는 롱 라이프 디자인을 전하는 편집숍입니다. 오랫동안 사용될만한 제품들을 판매합니다.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과 뛰어난 내구성, 장인 정신이 담긴 제품들이죠.
디앤디파트먼트는 일본 내 9개 지점을 비롯해 한국과 중국에도 진출했습니다. 국내에는 디자인 회사 밀리미터밀리그람과 아라리오가 각각 서울점과 제주점을 운영 중입니다. 특히 서울점은 본사 최초의 해외 매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2013년 한남동에서 문을 연 후,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명소로 자리 잡았죠.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 입구_출처: 디앤디파트먼트 서울
한강진역 3번 출구를 나와 마주한 거리는 낯설었습니다. 마세라티 같은 수입차 전시장과 구찌 등의 명품 매장이 즐비했죠. 마치 도로변에 펼쳐진 백화점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 아우라에 홀린 채 걷다 보니 심플한 화이트 톤 건물에 도착합니다. ‘d’ 한 글자만 적힌 간판.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입니다. 매장 안에는 원목 가구를 비롯해 호미, 석유난로 등 명품 못지않게 인상적인 제품들이 진열돼 있습니다.
서울점 내부_출처: 바이브랜드
디앤디파트먼트는 1998년 일본의 시대상과 맞물려 탄생했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재활용품점이 급증했습니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기업들의 제품 출시 주기가 빨라진 탓에 멀쩡한 제품들이 구형이란 이유만으로 버려졌기 때문인데요. 이를 안타까워 한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그는 가치 있는 제품이 정당한 값에 팔리는 매장을 짓기로 결심합니다.
2000년 디앤디파트먼트를 창업한 나가오카 겐메이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그의 포부에 대중이 공감했던 걸까요. 오사카, 삿포로 등 일본 전역으로 매장이 확대됩니다.
이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보던 곳이 있습니다. 국내 디자인 스튜디오 밀리미터밀리그람(MMMG)이죠. 2000년대 초반부터 수출 업무로 인해 일본을 왕래하던 MMMG의 눈에 디앤디파트먼트가 들어왔던 겁니다. 일방향적인 관심은 아니었습니다. 2010년 내한한 겐메이 회장도 우연히 방문한 MMMG 매장에 흥미를 느꼈죠. 이후 3년 정도 두 브랜드가 교류하던 중 그가 회심의 제안을 합니다.
“한국에도 디앤디파트먼트 지점을 내보는 건 어떠세요?”
메인 상권 버리고 한남동을 택한 이유는?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 내부_출처: 바이브랜드
지금이야 핫플로 인정받는 한남동이지만, 2013년 서울점이 오픈했을 때만 해도 조용한 상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편집숍은 가로수길과 명동에 몰려 있었죠.
철거 예정 건물이 리모델링을 거쳐 서울점으로 탄생했습니다. 디앤디파트먼트 최초의 해외 매장인 만큼, 본사와도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국내 롱 라이프 디자인 제품을 선정하고 매장을 구성하기까지 본사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죠. 겐메이 회장은 오픈 이후에도 꾸준히 방문했다고 합니다.
운영 초반에는 3050대 디자이너들로부터 관심을 받았습니다. 국내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낮다 보니 손님의 대부분이 이전부터 디앤디파트먼트를 알던 디자이너였던 거죠. 2020년 아라리오가 제주점을 오픈하며 많은 관심을 받고 한남동 상권이 활성화되자, 서울점에도 2030대의 유입량이 많아졌습니다.
호미, 석유난로가 진열되기까지
서울점에 전시된 파세코 석유 난로_출처: 디앤디파트먼트 서울
포천에서 장인이 만든 호미, 1980년부터 추위를 녹여준 석유난로. 약 20분간 서울점을 둘러보며 눈에 띈 제품들입니다. 보는 재미가 쏠쏠한 동시에, 이처럼 대중성이 낮은 품목도 취급하는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김송이 점장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대중성이 아닌 롱 라이프 디자인을 중시하기 때문이죠.”
제품 한 개가 진열되기까지 ‘사전조사’, ‘시연’, ‘현지 미팅’이란 3가지 노력이 이뤄집니다. 먼저 팀원들이 기준에 부합하는 후보 제품들을 조사합니다. 회의를 통해 선정된 일부 제품은 약 2주간의 테스트를 거치고 후기가 만족스러우면 생산자를 찾아갑니다.
“굳이 찾아가야 하나?”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품을 오랫동안 만들 의지와 적합한 생산 시설이 갖춰져 있는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죠. 공수가 많이 들지만 서울점이 절대 타협하지 않는 과정입니다.
서울점 내부_출처: 바이브랜드
매장 후기를 보면 ‘가격이 비싸다’는 평이 많습니다. 물론 구두솔, 치약 등 저가격대의 생필품도 많지만 50만 원 대의 가구들은 비싸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롱 라이프 디자인을 위한 생산 비용을 감안하면 정당한 값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서울점의 설명입니다. 재료 및 제작 과정에 대한 장인 정신은 생산 비용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높은 가격대가 형성된다는 겁니다.
판매 가격은 생산자가 정합니다. 서울점은 단 한 번도 세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제품의 가치가 정당한 가격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브랜드 철학이 돋보이죠.
같은 가격이라도 제품의 생산 과정을 알고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클 겁니다. 그렇기에 팀원들은 손님들에게 제품이 어떤 점에서 롱 라이프 디자인에 부합하는지를 자세히 공유합니다.
대형마트에서 볼 법한 식품 라인업
서울점에 진열된 다양한 식품_출처: 바이브랜드
매장 곳곳에는 다양한 식품도 진열됐습니다. 비중이 크진 않지만 들기름, 김, 소면, 게딱지장 등 대형마트 부럽지 않은 라인업을 자랑하죠. 업태를 막론하고 식품은 훌륭한 유인책입니다. 하지만 롱 라이프 디자인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식품들 사이에는 ‘지역다움’이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는 디앤디파트먼트가 추구하는 롱 라이프 디자인의 특성인데요. 지역의 문화가 담긴 제품은 오랫동안 사랑받고 꾸준히 사용된다는 겁니다.
서울점에 진열된 다양한 식품_출처: 바이브랜드
식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식재료, 풍토 등 산지의 장점을 활용해 만든 로컬 푸드 또한 오랫동안 소비될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죠.
진열대를 보면 각 식품이 어떤 지역성을 띠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고 싶어 눈여겨봤던 영덕 게딱지장 옆에는 특산물인 대게와 보라성게로 만든 영덕 군수 추천 상품이라고 적혀있더군요.
본사 직영점은 식품 판매를 넘어 레스토랑과 카페도 운영합니다. 인근 산지로부터 공급받은 식재료를 활용하고, 지역 생산자와 콜라보 메뉴를 선보이기도 하죠.
김장 모임 클래스, 들어보셨나요?
알기 쉬운 김장 디스쿨 포스터_출처: 디앤디파트먼트 서울
디앤디파트먼트는 판매만 하는 편집숍이 아닙니다. 롱 라이프 디자인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재미난 이벤트도 제공하죠. ‘디스쿨’이 대표적입니다. 생산자가 손님들을 만나 제조 과정과 제품 특징을 공유하는 클래스인데요. 사내 스터디 모임으로 시작했다가 손님들을 초대하기 시작하며 브랜드 활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유료 이벤트임에도 매번 인기가 많습니다.
그간 서울점도 다양한 디스쿨을 기획했습니다. 짚공예, 참기름, 유기 그릇 등의 생산자를 초청하고 ‘알기 쉬운 김장’ 디스쿨처럼 전통 문화를 알리기도 했죠. 알기 쉬운 김장 디스쿨에서는 신용일 한식 셰프가 손님들과 함께 김치를 담근 후 먹어보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겐메이 회장이 참여할 정도로 본사에서도 관심을 보인 주제였습니다.
디스쿨은 매장의 마니아층을 쌓는 것을 넘어, 유통 채널로서 생산자와 더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는 데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서울점 내부_출처: 바이브랜드
향후 서울점은 롱 라이프 디자인을 알리기 위한 도전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생산자, 지역 환경, 산업군, 사용자들의 특성 등 제품을 둘러싼 주변 요소를 매장에서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기획 중입니다.
오리지널 제품도 꾸준히 선보일 예정입니다. 오래전부터 사용된 제품군을 재해석해 디자인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오픈 초반부터 인기가 많았던 시리즈죠. 일례로 초록색, 분홍색에서 벗어나 새하얗게 제작한 이태리 타월은 지금도 스테디셀러입니다. 현재 국내 생산자들과 함께 오리지널 제품을 기획 중이며, 앞으로도 이 같은 협업을 전개할 계획입니다.
인터뷰 전에는 ‘롱 라이프 디자인을 전하는 상점’이란 콘셉트에 2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첫째, 오래 쓸 수 있다는 기준이 주관적일 수 있는데 어떻게 보완할지 둘째, 제품의 가치를 온전히 전할 수 있을지였죠.
인터뷰 당일 제품 선정 과정을 듣고, 품목별 특징이 빼곡히 적힌 진열대를 살피고, 매장 한 켠에서 펼쳐졌을 디스쿨을 상상해 보니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롱 라이프 디자인을 전하기 위한 노력이 많은 이들이 서울점을 찾는 이유임을 알 수 있었죠.
인터비즈 이한규 기자 hanq@donga.com